어느 재벌 회장이 "인재 한명이 만명을 먹여살린다"라는 말을 하고, 그 분 밑의 전직 회장님께서는 평준화 교육 때문에 인재들이 양성이 안된다고 평준화를 해체하고 경쟁위주의 교육을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말은 수없이 많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인재들을 발굴하고 기회를 제공하기 귀찮고, 돈도 많이 들어서, 또는 자신들의 현재 지위를 위협할까봐 하는 말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겁니다. 

조선시대 최대의 국난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 당시에 의심많고 협량하기 이를데 없던 선조임금과 그 밑에서 동인/서인으로 나뉘어 자기 당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느라 자기들 말만 잘 들었던 사람들만 관직에 등용했던 고위관료들에 의해 제대로된 인재가 등용되지 못하던 끝에. 임금과 고위관료들은 전쟁초기 파죽지세로 몰려오던 왜군을 막지 못하고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까지 몽진을 가고 명나라에 굴욕적 외교로 명나라 군대를 이땅에 끌어들였으나, 외국군대의 수탈이 극에 달해 여우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난 격이었던지라, 결국은 분노한 민중의 의병봉기와 몇 몇 뛰어난 장수들의 살신성인으로 7년이나 전쟁을 겪은 후에야 겨우 겨우 왜적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무능한 정부와 당시 지도층들에 대한 백성과 민중의 후회와 한탄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시중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합니다.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끝냈으리라." [참조 1] 

모두 처음들어보거나 낯설게 들리는 이름들 일겁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당시 민중과 백성의 가없는 인재에 대한 '갈구'와 함께 이러한 뛰어난 인재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저런 이유로 오히려 억압하고 탄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 소인배들에 대한 한탄과 원한이 담겨져 있던 것이지요.  


최근 인기영화 중 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실제 사건인 정여립 사건, 이몽학의 난을 배경으로 극적 재구성한 만화를 다시 영화화 한 것인데, 정여립 사건으로 수없이 많은 동인 세력들이 죽어나가면서 그나마 활동했던 몇 몇 인재들이 크게 죽어나갔고,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간에 있었던 이몽학의 난으로 인해 실제로 김덕령, 홍계남, 곽재우, 최담령 등 의병장들이 선조와 집권세력의 의심을 받아 결국 김덕령 장군은 자신이 죄없음을 알리기 위해 쇠줄을 세 번 끊고 세번 담장을 넘었다 들어왔다 하면서 자신이 힘이 없어 잡힌 것이 아님을 보이면서 결백을 주장했으나 지독한 고문끝에 장독으로 옥사하고, 최담령은 처형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이순신 장군등 뛰어난 무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까지 끝없는 의심의 눈초리와 위협을 가하면서 인재들은 국난에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겨우 겨우 나라를 지켜내고는 모두 죽어나가거나, 아니면 깊은 산으로 아무도 모르는 시중으로 몸을 숨기거나 하면서 나라의 인재가 씨가 말랐던 것입니다. 이런 사건 이후 조선의 인재들은 세상에 나오길 꺼려하면서 병자호란도 겪게되고, 결국은 일본에 국권을 넘기게 되는 국치를 맞게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재가 있었으나 쓰지못하고 오히려 죽였던 것이 벌써 500년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500년 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어느 재벌 회장의 말처럼 만명을 먹여살릴 인재 한명을 위해 오히려 나머지 만명의 인재 중 정말로 뛰어난 인재는 모른체 하면서 외국 유수의 학교에서 학위를 따고온 외국물 먹은 사람들만 인재랍시고 불러와서 써먹다가 자기들 입맛에 맛지 않으면 또 내치는건 아닌지요? 

그리고, 사교육 잘 받아 온갖 학력평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시험 잘치는 암기형 인재들만 좋은 대학가서 간판을 따고 이들에게만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창의적 인재들이 될 수 있는 비암기형 인재들은 그냥 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최근 정치, 경제, 교육 분야에서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자꾸 거론하곤 합니다만, 정작 인재를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거나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인재는 널리고 널려있습니다만,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보듯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리더를 찾아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500년 전 조선의 무능한 위정자들로 인해 인재가 죽어나가고 활용을 못했다면,뭔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할텐데 500년이 지난 지금도 무능한 위정자들로 인해 우리 주변의 수없이 좋은 인재들이 활용되지 못하고 그냥 묻혀나가는 것에 대해 통탄해 마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인재를 기르는 것 뿐 아니라 어떻게 인재를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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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그림 



참조1: [조용헌 살롱] 도가(道家)의 최풍헌(崔風憲)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끝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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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2: [최풍헌]불가사의한 도력을 지녔던 신선

http://www.etorrent.co.kr/bbs/board.php?bo_table=commu_03&wr_id=56&sfl=&stx=&sst=wr_hit&sod=desc&sop=and&page=11

조선시대 선조 때의 뛰어난 신선이었던  최풍헌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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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3: [구봉 송익필]  

구봉은 1534년 여산 송씨, 송사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7세 때 ‘산가모옥월참차山家茅屋月參差 - 산 속 초가집에 달빛이 어른거리네’라는 싯구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20대에 이미 ‘8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시와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당대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는 서로의 학문적 경지를 흠모해 평생에 걸친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일찍이 교육자의 길에 들어, 후일 예학의 대가로 크게 이름을 떨치는 사계 김장생, 수몽 정엽, 기옹 정홍명 같은 제자들을 배출해 냈다. 그러나 구봉은 신분차별이 엄격하였던 조선중엽에 태어나 종의 자손이라는 신분상의 문제와 동인들의 방해로 끝내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구봉의 외 증조모는 안씨 집안의 종이었다. 그의 아버지 송사련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외삼촌인 안당의 일가를 몰락시켰고, 신사무옥辛巳誣獄이라 불린 이 사건은 가문과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당시 유생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았다. 송씨 일가의 이러한 약점은 자식인 송구봉의 대에 이르러, 동인들에 의해 불거지게 된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사노(私奴:남자 종) 송익필을 체포하라!’는 요지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가 일찍이 관직을 포기하고 교육자로 나선 것도 이러한 출신상의 배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송구봉은 학문만 대단했던 것이 아니다. 번개가 치는 듯한 안광과 당당한 풍채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기백으로 인해 많은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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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http://blog.naver.com/corea2043.do?Redirect=Log&logNo=20000497890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그리고 이순신]  

동쪽 하늘의 두 별 

지금으로부터 삼백년 하고도 십여년 전, 조선 14대 선조대왕 시절의 이야기예요. 소년장사 김덕령이 한참 씨름판을 휩쓸던 무렵쯤이나 될까요. 그때 한양에는 신사임당의 아들 이율곡 선생이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어요. 이율곡은 학문은 물론이고, 별자리를 보는 눈이 남달랐어요.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세상일을 두루 헤아리곤 했지요. 하늘의 별 가운데는 율곡의 별도 있었어요. 동쪽 하늘 복판에 떠서 북두칠성보다 밝게 빛나는 별이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동쪽 하늘 외진 곳에 숨어서 홀로 그윽하게 빛나는 별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율곡은 그 별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저 별도 조선의 인물이 분명한데, 그 임자가 도대체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조선 천지의 이름난 사람 가운데 그 별의 주인공을 찾을 수 없었어요. '숨어 살고 있는 인재가 분명해. 내가 한번 찾아봐야겠어.' 율곡은 벼르던 끝에 어느 날 그 별의 임자를 찾아 여행을 떠났어요. 나라에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시골 선비처럼 조촐히 차려입은 채로 하인도 없이 말을 타고서 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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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http://santa21.com/gnu3/?doc=bbs/gnuboard.php&bo_table=zs_ksd&page=8&wr_id=215

[북창 정렴]배우지 않아도 하늘 아래 모르는 것이 없어

정북창(鄭北窓, 1506∼1549)의 본관은 온양으로 조선조 중종 즉위년(1506년)에 정순붕(1484~1548)과 완산 이씨 사이에 6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을사사화(乙巳士禍, 1545년)’를 기반 삼아 우의정까지 출세했던‘을사 삼간(三奸)’중 한 명이고, 모친은 세종의 장형(長兄)인 양녕대군의 증손녀이다.

정북창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으로 아주 뛰어났으며 천문, 지리, 음률, 의약, 수학, 한문, 복서(卜筮) 등 배우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하늘아래 있는 온갖 학문에 뛰어났으며, 스승 없이 혼자 터득하여 깨쳤다고 전해진다(장유의「북창고옥양선생시집서」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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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도교사상의 한국적 전개』한국도교사상연구회, 아세아 문화사『이야기 인물 한국사 2』이이화 저, 한길사『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강효석 편저, 화산문화『한국인의 과학정신』박성래 저, 평민사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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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1.01.11 2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진짜 창의적 인재는 언제나 세상의 휘황찬란한 간판뒤에 숨어있기 마련이지요. 때를 못만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불우한 인재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자신에게 맡는 일을 분담할 수 있었으면 바랄 바가 없겠습니다.

  2.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13.11.05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사람이 자기 타고난 능력을 맘껏 뭇사람과 뭇생명을 위해 쓰여지는 세상이 오기를 두손모아 간절히 기원하곤 합니다만, 그 날이 올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