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어바나 지역 탐방 (2) - 어바나 다운타운: Local Shopping at Urbana DownTown



2012년 9월 8일 미국 일리노이 대학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이 위치한 샴페인-어바나 지역 탐방 두번째로 어바나 다운타운 지역의 Farmers Market과 지역 상점을 구석구석 돌아보았습니다.  



ucsmiles.org

샴페인-어바나 지역에 기반을 둔 Local 비지니스 활성화를 통해 샴페인-어바나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지역 화페 운동 (Local Currency Movement)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다양하고 재밌는 여러 지역 상점 (Local Stores)를 샴페인-어바나에 새로 오시거나 낯선 한국분들에게 알려 드리고자 기획된 이번 샴페인 다운 타운 탐방 이벤트에 참가해주시고 도와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탐방에서 다루지 못한 더 자세한 지역 상점과 지역화폐운동에 대한 정보는 위의 UCSmils.org에 있습니다. 


일리노이 대학교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가 위치한 어바나-샴페인 지역을 처음 방문하시거나 새로 오신 분들은 이 쌍둥이 도시에 위치한 다양하고 재밌는 지역 상점에 대해 알기가 쉽지않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익숙한 대형 상점에서 소비활동을 주로 하게 되곤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인사동, 북촌마을, 그리고 각 지역의 전통시장 또는 지역기반의 작은 상점들을 이용하면서 느끼는 푸근함과 상점 주인들과의 따뜻한 인간관계 또는 믿음, 그리고 재밌고 독특한 경험을 통한 즐거움이 이곳 샴페인 어바나 지역에도 똑같이 있습니다. 이곳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니깐요. 게다가 미국 중부 지역의 독특한 문화인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을 느끼기에 지역 기반의 작고 독특한 상점을 방문하고 쇼핑하면서 상점 주인들과 서로 교류하고 이야기 해보는 것 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바나-샴페인 지역의 다양하고 재밌는 작은 상점들을 잘 모르거나 익숙치 않아서 지역 상점을 이용하는 즐거움을 놓치는 것이 아쉽기에, 작은 그룹을 만들어 샴페인 다운타운 지역의 몇몇 재밌고 독특한 상점들을 방문하고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원래 어바나-샴페인 지역은 먼저 어바나 지역에 유럽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이 먼저 도시를 건설하였고, 지금의 Main Street와 Springfiled 에 Trolley (전차)가 다니게 되면서 도시가 확장되어 갔다고 합니다. 지금의 샴페인 지역은 예전에는 West Urbana 지역으로 불리우다가 어바나에 법원이 들어서고 한참 후에 기차역이 만들어지면서 상업과 유통을 바탕으로한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새로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독립(?)해 나간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어바나 지역 분들은 샴페인 지역 보다는 좀더 전통적인 가치와 예술, Healing, 그리고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먼저 어바나 다운타운에 오시려면, 자동차로 Sprinfield 를 타고 일리노이 (UIUC) 대학교 동쪽 방향으로 계속 오시면 Main Street로 이름이 변하고 곧 링컨 대통령이 순회 판사시절 자주 찾아서 유명하기도한 멋진 법원 (Courthouse) 건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어바나 다운타운 중심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버스를 타고 오시려면 5번 버스나 그외에 Urbana 쪽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법원 앞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이번 어바나 다운 타운 탐방은 법원 건물 뒤편의 큰 복합 쇼핑몰인 Lincoln Square Shopping Mall 의 남동쪽 주차장에서 매주 토요일 아침 (8:00 AM ~ 12:00 AM)에 열리는 Farmer's Market 입구에서 아침 10시 30분에 모여 시작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Farmer's market에 오시려면 Springfield - Vine street 에서 우회전해서 300 M 정도 내려가면 링컨몰 동쪽 입구가 나오는데 이 길로 들어서면 바로 Farmer's Market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버스 정거장에서는 링컨몰 북쪽 입구로 들어와 남쪽 출구로 나오면 왼편으로 왁자지껄한 Farmer's Market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래 시장 Urbana Farmer's Market


Farmer's Market은 겨울 시즌을 제외하고 봄, 여름, 가을에 어바나 인근의 지역 농장이나 개인이 손주 경작한 지역 농산물, 수공예품, 그리고 다양한 문화 행사가 벌어지는 한국으로 치면 벼룩시장, 재래시장 또는 주말 장터와 같은 것입니다. 보통의 전통 재래시장이 그러하듯, 이곳 Urbana Farmer's Market에도 사람들 모여 왁자지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가 그득합니다. 또한, 평소에 마트에 가서 오랜 이송시간으로 인해 덜 싱싱한 과일이나 야채만 보다가 이곳 Farmer's Market에서 방금 따온 싱싱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양 손 그득이 사서 들고다니다 보면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되곤 합니다. 토요일 아침 조금은 여유있게 일어나 세수만 간단히 하고나서 그냥 모자하나 둘러쓰고 편한 복장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이곳 Urbana Farmer's Market에서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싱싱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싼 가격에 구입하고, 시장내 군것질 거리 예를 들어 미국식 핫도그, 방금 구운 팝콘 등 다양한 먹거리들로 간단히 요기하면 주말내내 활기차게 보낼 수 있습니다. 



Urbana downtown tour program을 했던 9월 부터는 호박이 제철이라 커다란 호박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이때 호박을 구입해놓고는 11월 할로윈에 유령 모양을 만들어 집 밖에 놓아두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조그만 장식용 호박 하나에 50센트라서 서내개 구입해서 집안 장식해 놓으면 멋진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Kim 이라는 아저씨가 운영하는 꿀 가게입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과당을 원재료로 한 가짜 꿀과는 달리, Kim 아저씨가 직접 어바나 외곽에서 벌꿀을 쳐서 직접 짜온 꿀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따뜻한 빵 한조각에 누텔라나 버터대신 킴 아저씨네 일반 꿀이나 쵸코렛으로 풍미를 더한 꿀을 발라먹으면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Urbana 지역 상점이 모인 쇼핑몰 Lincoln Square: 


많은 분들이 어바나 다운 타운에 오시면 왜 이렇게 상가들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될 겁니다. 그리곤 별 볼일 없다(?)는 식으로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바나의 지역 상점들은 대부분 법원 건물 뒤 Lincoln Square 라는 대단위 복합 쇼핑몰 건물안에 있어서 외부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그럴 뿐 정말 많은 지역 상점들이 Lincoln Square Shopping Mall 안에 있습니다. 


International Gallery @ Lincoln Square


일단 Lincoln Square Mall 에는 다양한 예술작품과 공예품을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Art Gallery와 공예품 상가들이 상당 수 있습니다. 먼저 International Gallery는 Lincoln Square 가 만들어지기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학교 중심가에 있었다고 합니다. 30년 전에 세워진 이곳 International Gallery 는 다양한 예술품과, 액자, 예술 사진, 그리고 지역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 International Gallery 는 지역화폐 운동 (UCSmiles.org)의 중심가게 중 하나로 추후 이곳 International Gallery 에서 지역 화폐를 환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중심가게로 활약하게 될 것입니다. 




Wind, Water and Light @ Lincoln Square


Wind, Water and Light라는 수공예 상가는, 친환경 재료를 활용한 예술 공예가인 아내 분과 지역에서 유명한 사진작가이자 화가로 활동하시는 남편, 이렇게 두분께서 직접 만든 다양한 수공예품과 작품들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매장내 한켠에 작업장에서 직접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때 그때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작품들을 나열해 놓고 계시는데, 이중 인상깊은 것은 버려진 유리조각이나 골프채 철사조각들을 이용하여 귀걸이, 옷걸개, 우산꽂이 등 참으로 창의적이고 독특한 생활용품들을 직접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원재료가격이 워낙 저렴(?) 하다보니 예술 작품의 가격이 비싸지도 않으면서 세상에 유일 무이한 것을 가졌다는 괜한 뿌뜻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 좋은 이 공방 주인 부부께서는 지역 예술가들을 위해 자신들의 공방에 자리를 선뜻 내어주고 그들의 작품 또한 대신 판매해 주고 계십니다. 다만, 이 분들 기준에 예술적 가치가 있고 소비자들이 감당할 만한 것들만 특별히 엄선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나 청소년 또는 예술에 관심있는 분들과의 교류 또한 너무 좋아하셔서, 미리 이야기하고 작품 활동에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이곳 공방에서 이런 저런 조언과 도움을 주신다고 하니, 아이들이나 본인의 예술적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곳에 오셔서 도움을 받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Art Mart @ Lincoln Square


Lincoln Square 남쪽 문으로 들어오게 되면 바로 왼편으로 Art Mart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이곳 가게에는 다양한 생활 용품 들, 그릇, 주방용품, 그리고 다양한 자잘한 용품들이 있는데 보통의 가게와는 달리 예술적이고 독특한 가치를 가진 차별화된 품목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곳 가게에서 직접 만든 양초 그리고 멀리 일본에서 수입한 진짜배기 향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곳 가게 맞은편에는 아이들 장난감이나 용품을 파는 Art Mart for Children 도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오면 독특하고 재밌는 장난감 구경 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합니다. 




Transitions @ Lincoln Square


Art Mart 옆으로 조금만 더 가다보면 Transitions라는 가게가 나옵니다. 

얼핏 보기에는 재활용 옷을 파는 그저 그런 평범한 가게로 보입니다만, 사실 이 가게는 재활용 옷 파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인 "Women in Transition" 이라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사용되지 않는 옷이나 물품들을 기증받아 수선해서 다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모든 판매 수익금은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의 교육, 훈련, 그리고 창업을 위해 100% 활용되는 공익을 위한 가게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 옷이나, 아니면 계절별로 이런 저런 옷이 필요할 때는 이곳 Transitions에 오셔서 깔끔하게 수선된 옷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면서 더불어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을 위한 좋은 일을 한다는 뿌뜻함까지 함께 가져가시는 것도 매우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집안에 고이 모셔두고 버리긴 아깝고 그렇다고 두고있자니 짐만 되는 것들은 이곳 Transitions에 기증하시면 불필요한 짐도 덜고 좋은 일에 기여도 하고 누이좋고 매부좋은 상생하는 즐거움을 느끼실 겁니다. Women in Transition 이라해서 여성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복, 아이들 옷 모두 다양하게 기증받고 재판매 하고 있으니 구경삼아서라도 꼭 들려볼만한 곳입니다. 만약 봉사활동에 관심있는 분들은 이곳에 계신 자원 봉사자 분들께 문의하시면 여성을 위한 다양한 봉사 활동 프로그램 또한 안내받으실 수 있습니다. 




Unique Baby Gifts @ Lincoln Square


이번 Urbana 지역 상점 탐방에서 아이를 가진 어머님들을 완전 매혹시킨 장소가 바로 Unique Baby Gifts라는 2살 이하 아이들을 옷과 퀼트, 그리고 다양한 수제 아기 용품들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일흔 가까이 되시는 세 분의 미국 할머니들께서 은퇴 후 본인들의 손재주를 살려 일일히 손으로 뜨개를 뜨고, 천연재료로된 천을 재단하고 가봉하고 손수 바느질 하여 만든 두살 이하의 어린 아기들을 위한 용품들을 파는 곳입니다. 여자 분들께서는 특히 손으로 직접 뜬 작은 아기 신발하고, 앙증맞은 신생아용 털모자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한동안 '이런 예쁜 것들 입히고 신겨보게, 이참에 늦둥이 한 번 낳아볼까?' 라고 하시면서 한동안 아주 눈을 못떼고 매우 즐거워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아예 한국에 있는 동생 분 이번에 아기 낳았는데 선물로 주신다고 수제 아기 용품 몇가지를 사고는 진짜배기 "Made by US 할머니 정성"을 보낸다는 생각에 매우 즐거워하셨습니다.  

  



Energy Healing Systems, @ Lincoln Square


서양사람들에게는 좀 낯설지만, 동양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자연치유요법이란 것이 있습니다. 독성이 강한 약대신   인간이 가진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연에서 추출한 다양한 생약이나 엣센스 오일 등을 사용하여 통증을 완화하고 몸안의 독소를 줄이고자 하는 대체요법을 하는 곳이 바로 Energy Healing Systems 라고 Lincoln Square Mall 안에 있습니다. 



이 가게 주인이자 자연요법 치유사인 Jon R. Link 씨가, 우리가 방문 했을 때, 자연 치유 요법에 친숙한 동양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면 매우 반기면서 예정에도 없던 진단 시범까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 지역 상점 탐방 프로그램 참가자와 지역화폐 사용자에게는 첫 진단과 방문시 50% 할인된 가격인 $60에 진단과 처방을 하겠다고 특별한 호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Urbana Acupunture @ Lincoln Square


이번 탐방에는 기회가 없어 방문하지 못했지만, Lincoln Square 안에 동양식 "침"을 맞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Urbana Acupunture 라는 곳인데, 이곳 주인장은 동양인이 아닌 젊은 미국 분입니다. 동양의 침술에 매료되어 정식으로 미국내 한의학과를 마치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침술을 배운 후 시카고에서 활동하다가 조용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이곳 Urbana에 침술원을 차리게 되었답니다. 조금은 냉정한 전형적인 미국 사람이라기 보단 동양적 정과 사람과의 교류를 즐거워하는 유쾌한 젊은 청년(?)이신데, 운동하다가 발목 삐거나 고질적 허리 통증 등 일반 양방 병원에서 별 치료를 받을 수 없지만 가만두면 아픈 것들은 침으로 한 번 다스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이곳 역시, 지역 탐방 참가자와 지역화폐 사용자 분들께는 특별 할인을 해 줄 예정입니다. 



Photo source: http://www.merchantcircle.com/business/Urbana.Acupuncture.217-344-9118/picture/view/3478124


이상 시간 관계상 아주 일부만 들러보고 소개한 Lincoln Square 내의 지역상가들 입니다. 


하지만, 더욱 많은 다양한 상가들 예를 들어 생활협동조합(생협)인 Common-Ground Food Co-Op이 있고, Yoga Studio와 실내 체육 시설도 있으며, 주말이면 Lincoln Square 내의 큰 광장에서 지역 예술가들이 돌아가면 무료 공연을 하거나 댄스 공연을 하는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이 벌어지곤 합니다. 토요일 아침 Farmer's Market에서 장보고, Lincoln Square Mall 안으로 들어와서 다양한 예술작품을 파는 갤러리와 몸이 아플때 잠시 침을 맞거나 자연치유를 받아보고, 요가 수업을 듣는 등 여유로운 하루를 통해 스스로를 재충전 해보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독특한 Urbana 문화를 만들어 가는 Main Street 지역 상점들


Lincoln Square Mall 에서 북쪽으로 나와 법원 건물 쪽으로 나오면 Main Street가 나옵니다. 이곳 Main Street에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심드렁하게 지나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알고보면 이 오래된 시가지에도 여전히 많은 독특한 지역 상점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이번 지역 탐방에는 갤러리와 눈에 띄는 상점 몇 군데만 가 보았지만, 추후 Urbana Main Street 지역의 다양한 Bar와 주점들 그리고 예술 공연장들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Keltic (Celtic) Culture를 느낄 수 있는 heartland Gallery @ Main Street


혹시 켈트족이라고 아시나요? 켈트족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알프스 산맥 주변에서 출연하여 이후 프랑스 갈리야 지방에 정착했다가 전유럽으로 퍼져나간 독특한 유럽부족입니다. 지금은 특히, 스코트랜드, 아일랜드 등지에 순수 켈트족 문화가 남아있는데 이런 신비한 켈트족 문화를 바탕으로한 많은 예술작품과 공예품을 파는 곳이 heartland gallery 입니다. 이 가게 주인께서 영국에서 이곳으로 이민오신 분이고, 켈트 문화를 알리고 독특한 켈트 공예품들을 판매하고 계십니다. 



아래 사진에 주인장께서 들고계신 것이 켈틱 문양으로 만든 공예품인데, 얼마전 스코틀랜드에 가서 직접 사가지고 와서 방금 포장을 풀고 계신 것을 이번 탐방팀에게 자랑스레 소개해 주고 계십니다. 이곳 가게에는 이러한 독특한 켈틱 문화 바탕의 공예품, 사진, 그림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고 판매되고 있습니다. 특히 귀걸이나 장신구의 경우에는 독특한 문양으로 Unique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가게 주인 분의 따님께선 한국문화에 푹빠져서 한국의 고려대학교에서 국문학 석사를 하고 얼마전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K-Pop과 한국문화 전도사를 자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가게 주인장께서 우리 한국인들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와 하시면서, 나중에 딸이 있을 때 와서 한국말로 대화하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떠십니다.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사랑하는 가풍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녹아나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합니다. 




Priceless Books @ Main Street


요새야 전자책이다 인터넷이다해서 컴퓨터나 핸드폰에 파일로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데 누가 무거운 책 들고 다니려고 하겠습니까? 하지만, 여전히 오래된 책에서 나오는 '지혜'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이 귀한 책이란 의미의 "Priceless Books" 라는 서점 또한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곳 서점에는 다양한 중고책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양서 내지는 고전으로 검증된 '좋은 책, 읽어서 마음의 양식이 되는 책' 만을 고집하고 있는 곳입니다. 어릴적 오래된 책에서 나는 알싸한 냄새를 맞으며 중고책 가게를 뒤적이다 행여라도 구하기 힘든 책을 구했을 때의 감동을 느껴보실 분이 계시다면 이곳 Priceless Books 야 말로 가장 적합한 장소일 겁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 감성이 여전히 유효한 건, 사람은 0과 1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아날로그적 존재라서가 아닐까 생각하게 끔 하는 곳입니다. 




Mirabelle 빵집 @ Main Street


지난번 샴페인 다운타운 투어에서 잠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entry/Champaign-DownTown-Tour), 어바나-샴페인 지역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빵집이 바로 Mirabelle 인 것 같습니다. 이 빵집은 간판도 제대로 없고 아주 작은 상점이라 얼핏 보면 이런 가게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작고 볼품없어 보입니다만, 사실은 작은 진열대와 판매대 뒤로 큰 빵 굽는 공간이 있어 많은 빵을 만들고 거의 도매(?)와 같이 지역의 고급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에 최고 품질의 빵을 공급하고 있는 곳입니다. 매일 매일 빵을 굽고, 그때 그때 구워진 빵만을 판매하기 때문에 방부제나 첨가제 등은 당연히 없고 맛 또한 방금 구운 빵맛 그대로인지라 이곳 지역에서는 최고의 빵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맛없는 빵이 질리신다면, 구지 시간내어 이곳 어바나 다운타운내에 위치한 Mirabelle 빵집에서 질좋은 빵 한 번 맛보시면 진짜 빵이 주는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Bead N Botanical @ Main Street


제가 Mirabelle 빵집에 정신이 팔려 잠깐 Tour Program 일행을 놓치는 바람에, Bead N Botanical 이라는 독특한 공예품 가게 방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Beads 이용하여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것이 주된 상점입니다만, Beads 공예 또한 친절히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또한 향초나, 동양의 향이나 아로마 오일 등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하는 다양한 식물성 아로마 제품 또한 판매하고 있습니다. 








블링블링한 여성 전용 의류점 Wooden Hanger @ Main Street


젊은 여자 분들이야 청바지에 후드티만 입어도 예쁘다고 하지만, 나이 좀 있고 사회적 지위라는 것도 신경쓰이게 되고, 혹여라도 아이들 학교에 선생님과의 면담이라도 있을라치면 막상 입고 갈 옷 한 벌 없는게 30-40대 여자 분들의 고민이라고 합니다. 요럴 때 가볼 만한 곳이 바로 The Wooden Hanger 라고 하는 여성 의류 전문 매장입니다. 



Main street 초입의 Corner 에 있는 곳인데, 30-40대 여성들을 주 고객층으로 하여 매우 독특한 패션을 추구하는 Unique 한 의류점입니다. 물론, 비싼 명품으로 치장해서 자신의 패션감각을 뽐내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이곳 주인장의 말씀에 따르면 진정한 패션의 멋은 비싼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함을 센스있고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 이라고 합니다. 이런 주인장의 지론에 따라 매우 독특하면서도 적절한 가격대의 Fashionable 한 여성의류를 소개하고 Fitting 해주고, Matching 시켜 주는 곳이 Wooden Hanger라고 합니다. 옷 없다고 고민하는 아내를 위해 명품 매장에 아내를 못 모시고 가는(?) 남편 분들께 특히나 추천해 드릴 만한 장소입니다. 




뜨개질 왕국 KLOSE KNIT @ Main Street


요즘 세상에 누가 뜨개질해서 옷이며 장식품이며 목도리 같은 것을 해 입겠습니까만은, 많은 미국분들은 여전히 자신의 손으로 직접 뜨개질해서 아이며, 남편이며, 친구들에게 정성을 담아 선물을 하곤 합니다. 이런 뜨개질로 한땀 한땀 손수 만든 제품을 살 수도 있고 뜨개질을 배울 수 있는 곳이 Springfield와 Main street 초입구의 평범한 가정집 처럼 보이는 KLOSE KNIT라는 곳입니다. 



다양한 뜨개질 제품을 물론이고, 여러 뜨개질 용품과 실을 구비하고 있으며 언제든 이곳에 방문해서 이 가게 주인장이나 다른 미국 분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뜨개질로 뭔가를 직접 정성들여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나 지역 탐방에 나선 여자 분들께서 수많은 신기한 Pattern들을 보면서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냐, 저건 어떻게 하는 거냐면 질문이 끊이질 않음에도 불구하고 늘 상냥하게 웃으면서 차근 차근 설명해주시는 주인의 아름다운 미소가 참으로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건강한 생활의 기본 Strawberry Fields @ Main Street


최근 들어 먹거리며 생활용품에 대한 불신이 날로 높아져 가는 것 같습니다. 혹시 해로운 농약은 없는지, 혹시 사용하는 샴푸며 화장품이 몸에 나쁘진 않은지 어느 것 하난 마음편히 먹고 쓰고 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늘 마음이 불안하곤 합니다. 이렇게 먹거리나 생활용품에 대한 안전성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Springfield - Main street 초입구에 있는 Strawberry Fields 라는 자연 식품 매장에 오시면 건강한 유기농 식품과 건강에 좋은 천연 화장품, 생약, 그리고 안전한 생활용품 들을 살 수 있습니다. 



이곳 Strawberry fields 주인에 따르면 원래는 작은 유기농 식품 가게로 시작했으나,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건강한 먹거리와 더불어 건강한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 매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고 합니다. 토요일 아침이면 어바나 샴페인 지역 뿐 아니라 인근 도시인 Danville, Decatur, Mahomet 등에서 건강한 먹거리와 생활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많은 분들로 꽤나 번잡한 편입니다. 



특히 최근 여성용 어린이용 천연 화장품과 샴푸 등 위생용품에 대한 수요 급증에 대해 좀 더 전문적으로 대응하고 보다 많은 분들께 안전한 용품을 소개하고 도와드리기 위해 따로 공간을 만들어 전문가를 두고 세밀한 상담을 통해 피부와 미용제품을 추천하고 있다고 합니다. 


추후 이곳 Strawberry Fields 매장이 지역 화폐운동 (ucsmiles.org) 의 거점으로 활약하기로 하는 등 지역 공동체 전체의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 매장이기도 합니다. 





Authentic Thai Restaurant, Siam Terrace @ Main Street


어바나 지역 상점을 둘러보면서 재밌는 이야기도 듣고, 이것 저것 눈길 끄는 것도 많아지다 보니 예정 보다 훨씬 늦게 되어 점심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Urbana 지역에 다양한 식당과 Restaurant이 있긴 하지만, Strawberry Fields 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가려다보니 자연스럽게 태국 음식점인 Siam Terrace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시켜놓고,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음식이 나왔는데 맛있는 태국 음식을 허겁지겁 먹느라고 아차하고 사진을 못 찍었습니다. 그런만큼 이곳 Siam Terrace 의 태국 음식점은 다른 Fusion 내지는 저렴한 타이 음식점 과는 달리 Authentic (진짜배기) 양질의 타이 음식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특히나 이상하게 젊은 여성 분들이 좋아하시는데, 점심시간에 특별 할인 된 가격으로 맛있고 깔끔한 태국 음식을 즐길 수 있어 그런게 아닐까라고 짐작을 해봅니다. 


Courier Cafe @ Main Street


어바나 지역에는 지역 기반 카페가 딱 한군에 있습니다. 학교 캠퍼스내에 Lincoln street에 있는 Cafe Paradiso 라고 한국인 주인장 께서 운영하고 계시는데, 이곳 커피가 아마도 인근 지역내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일 겁니다. 물론 간단한 요기거리도 훌륭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바나 다운타운에는 전문 카페는 Shnucks (슈넉스) 근처의 Starbucks 밖에는 없어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문 카페는 아니지만 전문 카페 못지않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Courier Cafe 라고 하는 곳입니다. 원래는 지역 신문사였지만, 운영상 어려움으로 오래전 레스토랑으로 변경한 곳입니다. 이름은 Cafe이지만, 주로 맛있는 미국식 요리가 메인입니다. 특이하게 샐러드 바 (Salad Bar)를 운영하고 있어 샐러드 가격을 지불하고나서는 양껏 마음대로 먹고싶은 만큼 샐러드를 먹을 수 있기도 합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침 겸 점심인 브런치 (Brunch)가 특히나 유명한데, 토요일 아침 Farmer's Market 들려 장보고, 어바나 다운타운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이곳 Courier Cafe에서 미국식 브런치와 더불어 독특한 향의 커피를 마시면 주말의 여유로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탐방은 Urbana 뒷골목..! 


앞으로 가볼 곳 @ Main Street


이번 어바나 지역 탐방에는 못 가봤지만, 앞으로 꼭 가볼 예정인 곳이 있습니다. 


일단, Corson Music's Guitar Store 라고 유명한 기타 연주자 인 이 가게 주인께 들려 멋진 기타 선율을 듣고 또 배워볼 기회를 가져보고자 합니다. 



이번 지역탐방에는 주로 Urbana 지역의 앞골목(?)을 돌아다녔다면, 다음에는 Urbana 지역의 뒷골목에 위치한 다양한 Bar 와 주점, 연극 공연장, 그리고 독특한 골동품 점, 벼룩시장 역할을 하는 상점 등 다양한 지역 상점들을 탐방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듯 얼핏 보기에 별 것 없고, 평범해 보이는 Urbana Downtown에도 이 도시의 역사가 오랜만큼이나 다양한 지역 문화를 가진 지역 상점과 또 이를 운영하고 유지해 나가는 재밌는 Urbana 지역 사람들이 있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 조그마한 도시가 가진 독특한 문화와 재밌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Urbana-Champaign 지역 상가 탐방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보자는 약속을 하면서 Urbana 지역 탐방 첫 후기를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9월 8일 


최정환, 


UCSmiles Project Team, 


Ph.D. student, Human Resource Development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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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21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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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남북통일에 대한 직문직답, 그리고 통일 첫 세대 육성을 위한 제언.

지난 2010년 9월 15일 정토회 법륜스님께서 미국 순회 강연의 일환으로 제가 있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UIUC) 에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평소 궁금했던 '통일 첫 세대 어떻게 기를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드렸고 이에대한 법륜스님의 직답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죄송스럽게도 전문을 옮기지는 못하고, 제가 적고 이해한 만큼 정리한 관계로 다소 스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먼저 밝혀놓습니다. 또한 다른 좋은 말씀들도 많았으나, 통일문제에 대한 것만 정리했다는 점도 알립니다. 

법륜스님의 남북통일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없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북녘동포 도움 활동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진. 법륜스님 강연 모습, 2010년 9월 15일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Illini Union Room 210, 8:00PM~10:20 PM, ). 

질문: 독일에서 공부할 때 독일 통일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Dr. Fritsch (프리츠) 박사님 [주: Flucht Aus Leipzig 저자, 뮌헨 대학 교수] 께 한국 통일에 대한 제언을 부탁드렸을 때 두가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남북한 경제 격차를 줄이라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통일 첫 세대를 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어떻게 통일 첫 세대를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스님께서 북한동포를 돕는 일도 많이해오셨고, 가교 역할도 많이 해오신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통일 첫 세대를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한 스님의 답을 구합니다. [일리노이대학교 인재개발 (Human Resource Education) 박사과정, 최정환] 


총, 칼 들고 넘어오는 사람은 막을 수 있어도, 숟가락 들고 넘어오는 사람은 막을 수 없다.

먼저 제가 이해하는 톡일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을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말하길 사람들의 경제적 이주 (Economic Mobility)는, 만약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는다면, 나라간에 경제 수준이 60% 정도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경제적 이득이 다른 나라로 이주 했을 때 두 배를 조금 넘지 못하면 사람간의 관계와 같은 비경제적 이득에 견주어 별다른 이득이 없다고 생각해서 경제적 이주를 더 이상 하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독일의 경우에는 서독이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도 당시 서독과 동독의 화폐를 1:1로 교환해 주므로서 최대한 동, 서독간의 경제적 차이를 줄였던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이런 화폐 개혁을 통해 동독 주민들이 계속 동독지역에 머물 수 있도록 할 수 있었고, 동독 지배 계층의 기득권을 인정함으로서 통일 저항 세력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분단비용보다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예부터 '총, 칼 들고 넘어오는 사람은 막을 수 있어도, 숟가락 들고 넘어오는 사람은 막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자 하지 않았다면, 숟가락 들고 넘어오는 동독 주민들로 심각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 되었을 것이고 결국 통일은 실패 했을 겁니다만, 서독의 지도자들이 서독인들의 끝없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이런 과감한 통일 정책을 밀고 나갔기에 지금은 유럽의 중심국가라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남북 대치 국면이 통일 우호 세력을 절멸하고 있다. 

통일 당시 독일과 지금의 남, 북 분단 상황의 가장 다른 점은 '교류를 통해 길러진 서로에 적응된 세력' 이 있고 없고의 차이 인 것 같습니다. 

분단 상황에서도 서독과 동독은 서로간에 방송, 통신의 교류, 그리고 공통된 종교간의 교류, 그리고 특히 민간 영역에서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로간에 다름을 이해하는 세력이 있었고, 이들이 결국 통일의 첫세대로서 활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남한, 북한의 경우에는 이런 '서로에게 적응된 세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남한의 경우엔 과거 전쟁을 경험했던 북한에 '적대적 세력' 과 최근 젊은 세대처럼 북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질적 세력,' 이렇게 두가지 세력이 지배적이며 이 중간에 북한을 이해하려고 했던 과거 운동권 세력이 거의 해체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지난 DJ, 노무현 정권에서 북한에 호의적이었던 세력 또한 새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두 쫓겨나다시피 하면서 지금은 남한에서는 북한을 이해하는 세력 자체가 없는 듯 보입니다. 북한의 경우엔 민간 영역이라고 하는 부문 자체가 없다시피 하고, 과거 남한의 통일 우호 정책하에서 약간의 교류를 통해 만들어 졌던 북한내 자유세력 즉 탈북자, 한류바람을 타고 들어갔던 남측의 대중 문화를 즐기던 젊은이들, 그리고 남한 물건을 시장에서 몰래 몰래나마 사고 팔던 사람들 마저 최근 남북의 대치 국면에서 북한 내에서 숙청당하고 쫓겨나면서 이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통일 우호 세력이 거의 절멸하다시피 한 것 같습니다.  


통일은 미래 한민족 번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나 북한 모두 '미래 지향적 통일론' 을 바탕으로 교류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현재 통일에 대한 접근은 두가지 정도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맹목적 통일론'으로 우리 민족은 원래 하나 였으니 무조건 다시 통일 해야 한다고 하는 접근이 있고, 둘째는 아직 통일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차근 차근 준비하고 실력을 배양하면서 점진적으로 통일 하자고 하는 '점진적 통일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가지 접근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점진적 통일론은 결국 남, 북한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하는 통일 반대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임에 다름 없습니다. 즉, 통일 반대 세력의 논리적 근간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반면 맹목적 통일론은 구체적 실천 방안이 없기에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현 집권세력이 국민소득 $40,000 불 시대, 세계 경제 7-8위의 경제 강국 달성이란 구호를 내걸고 정권을 잡았으니, 이런 목표는 '꿈이 아니라 욕심' 입니다. 즉, 국민적 Vision 이 안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평균 국민 소득이 높다한들 각 국민의 '삶의 질' 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고, 경제 규모 7-8위는 현재 남한 인구 5,000만명 그리고 제한된 영토로 인한 물리적 시장 규모의 제한으로 인해 달성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남한 보다 작은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경제 규모가 남한 보다 상위인 나라들 즉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일본과 비슷하거나 더 넘어서려면 최소한 인구 1억명, 그리고 주변국과의 경제 교류 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야 하는데 이는 남,북한 간의 교류확대와 통일로 달성될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도 이런 규모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을 식민지로 병탄시켰던 것인데, 이렇게 남의 나라를 억지로 뺏어서라도 규모를 키우는데 하다못해 제나라인 북한하고는 통일이라도 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민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정체 또는 쇠퇴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 중국은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20~30년내에 이 둘의 위상이 동등 내지는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계정세에서 앞으로 한민족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과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신라나 조선과 같이 외부세력 에종속되어 주변국가로 자리매김 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지킬 수 있는 독립된 세력으로 성장해 나가야 하겠습니까? 

지금 북한은 겉으로는 주체사상이란 것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경제/사회적으로는 중국에 점점 더 종속되어 가고 있습니다. 남한도 현재 친미 정권인 냉전 세력이 집권하고 있으면서 서로간에 갈등과 경쟁이 점점 더 심화 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고 남한은 계속 친미정권이 집권하게 되면 과거와 같이 외부세력에 종속된 주변국가로서 우리의 민족적 위상은 차제하고라도 우리의 생명권마저도 남의 손에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졸렬한 국가로 다시 떨어지고 말겁니다. 

이러한 때에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적 책임감을 가지고 민족과 국가에 대한 Vision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 나갈 리더십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를 기르기 위해서는 세가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첫째, 한국의 고대사를 다시 정립함으로서 민족적 자긍심을 확립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중국과 서구 (특히, 미국) 과의 관계에 대한 심각한 열등감에 기인한 자신감 결여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황하문명보다 2,000 ~ 3,000 년 앞선 문명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발굴된 유적들을 조용히 덮고 많은 학문적 노력을 통해 중화주의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주: 홍산문명을 중국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탐원 공정을 말씀하신 것 같음). 또한 근대화 과정과 분단 과정에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세력에 대한 열패감으로 인해 무조건 서양 것을 추앙하는 것도 문제인데, 물론 여러분과 같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분들도 그런 것에서 자유롭지만은 않을겁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나서 제나라 것을 깔보고 학문적으로 종속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학위과정 중에는 충실히 배우고, 학위도 따고 해야 합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스스로 공부를 해나갈 때는 미국의 것만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독창적 학문체계를 세우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 고대사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중국이나 서구 (미국)에 대해서도 당당한 민족적 자긍심이 길러질 수 있습니다. 

둘째, 독립운동사를 다시 정립함으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재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초창기 독립운동사를 보면, 민족주의 사회주의세력이 거의 비등했으나 이후 일제 말기로 오면서는 혹독한 탄압으로 인해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은 쇠퇴하고 그나마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이 두드려졌습니다. 그라나 남한, 북한 모두 이러한 독립운동사에 대해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쪽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을 무시해왔고, 북한은 민족주의 계열과 비 김일성계열 사회주의 세력의 독립운동에 대해 많이 왜곡해 왔기 때문에 우리 독립운동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일본에 대한 묘한 경쟁심 내지는 열등감으로 인해 발전적 관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합니다만, 우리 또한 '비록 일제시대 당시 우리가 지배받기는 했어도, 우리 스스로 일본 너희들에 대해 가열찬 투쟁을 통해 우리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었다' 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일본과도 당당하게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교류, 협력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인류 보편의 휴머니즘 (인류애)에 입각한 민족적 비전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남한의 일부 사람들이 말하길 '아니 어떻게 우리의 적을 도울 수 있소?' 라고 하면서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하는 저를 비난합니다. 거꾸로, 북한에서는 '아니 어떻게 우리의 주체적인 공화국 체제를 비판할 수 있소?' 라고 하면서 저를 옥죄기도 합니다. 미국의 고위 당국자와 이야기 할 때도 '아니 북한과같은 깡패국가를 어찌 두둔하시오?' 라고 하면서 저를 북한의 스파이 아니냐고 몰아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제가 묵묵히 감내하는 것은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신 부처님의 일생을 따르고자 하는 서원' 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은 생노병사의 괴로움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셨던 것이기에 그 분을 따르고자 당장 굶어 죽고 있는 북한 동포를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들을 억압하는 잘못된 정치체제를 비판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며, 이런 사람들을 돕기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십시일반 모아 보낸 영양가루를 먹고 살이 오르는 북한 어린이들 앞에서 누가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또한 이런 절대 영양부족 상태의 어린이들을 살리고자 갈등있는 세력간의 중재를 하는 것이야말로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신 것이 그 분의 일생이시니, 기독교이건 불교이건 종교를 떠나 보편적인 인류애를 바탕으로 '사랑,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같은 민족인 북한 동포에게 하는 것이니 제가 뭐가 꺼리낌이 있겠습니까? 

이와같이 종교, 사상, 경제 체제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인류애를 바탕으로 우리민족을 살리고자 하는 민족적 비전을 갖추어야 통일은 물론이고 만 중생을 구제하는 참된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도자가 통일 첫 세대를 여는 참된 리더십이며 또한 통일을 넘어 인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세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희망은 있다.  

법륜 스님의 '통일 첫 세대 어떻게 기를 것인가?' 에 대한 답변을 듣고 나서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 말씀하신 보편적 인류애와 민족적 책임감을 가진 미래 통일 세력이 누구 일까에 대한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보편적 인류애와 민족적 동포애를 가진 '휴머니즘 세력'의 사례입니다. 

미국 유학생 모임에서 만든 '정대세의 눈물' 이라는 비디오가 미국 Wired 에서 개최한 '평화를 위한 인터넷 컨테스트' 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국적의 북한대표선수인 재일교포 정대세 선수의 뜨거운 눈물을 주제로 평화를 기원하는 비디오 였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인류 보편의 염원인 평화와 남북한 대치상황에서 한 개인의 뜨거운 눈물에 감동할 줄 알고, 이를 계기로 가슴아픈 우리 민족의 아픔을 승화하기 위해 자그마한 힘이나마 보태는 젊은 학생들이야 말로 미래 통일 세력의 주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참조1: 韓유학생, 국제 인터넷 동영상대회 우승>



둘째, '남, 북한 과학기술자 세력' 사례입니다. 

2010년 ASEE (미국 공학 교육 학회, American Society of Engineering Education) 잡지인 Prism 여름 특별판에서 북한의 과학기술에 대한 특별 리포트를 통해 남북한의 과학기술자들의 협력으로 연변과학기술대학과 평양과학기술대학이 설립되었고, 이러한 시도가 북한과 한국 그리고, 미국 과학기술자들간의 교류를 이끌고 있고 미래 교류협력에 큰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참조2: HAMMER, BRUSH, & SICKLE: Pulling back the curtain on North Korean engineering.>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IT, NT, BT 등 다양한 과학기술분야에 대한 교류와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 북한 과학기술자들은 물론 정책결정자들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정치적 갈등을 뛰어넘어 미래의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으로 민간영역의 과학기술교류협력에 대한 요구 또한 높고 남한과 미국내 한국계 과학기술자들은 물론 미국 과학기술자들 또한 과학기술발전을 통한 사회 변혁에 대한 열망과 지원 또한 높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 통일 첫 세대로서 이러한 '과학기술자 세력' 또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할 것입니다. 


셋째, 남북, 일본, 중국 시장을 아우르는 '혁신적 창업가 세력 (Innovative Entrepreneurs)'의 사례입니다. 

지난 2010년 5월 한, 중, 일 지도자들이 제주도에 모여 합의한 중, 장기 '한, 중, 일 경제 통합'을 위한 3국 협력 사무국 설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경제 규모 2, 3위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 경제 규모 11위인 한국의 동북아 3국의 경제 통합은 가속화 될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장기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지역 경제 통합 요구가 커지고 실제로 유럽의 EU, 북미의 NAFTA, 남미의 MERCOSUR, 동남아의 ASEAN 등이 지역내 무역 활성화를 위해 관세 철페 등을 통해 지역 경제 통합을 하고 있는 반면 경제 규모가 큰 동북아 삼국은 아직까지도 정치사회적 대결 구도로 인해 통합이 지지부진한 상황이고, 특히 남, 북한 대결로 인해 동북아 경제통합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관계로 이러한 비정상적 불균형 상태는 오래가지 못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참조3: "3국 협력 사무국 설립...한중일 경제 통합 추진">

이런 동북아 경제의 통합과정에서 북한이 낙오되거나 남한이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경제통합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문제는 남북 경제 통합을 이끌 '혁신적 창업가 세력'이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서 나와야 하는데 이는 서로간에 정치체제를 넘어서 상호간에 경제적 이득과 문화교류를 이끄는 협력적 비지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창업이 활발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현재, 남한은 청년실업이 커다란 사회 문제이며 이는 기존의 재벌 위주의 경제발전모델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국가 통제 경제로 자율적 경제 활동이 거의 전무한 상황인데 더 이상 국가 통제 경제 모델이 작동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개인의 자율적 경제 활동을 보장하는, 최소한 중국 정도의 경제 활동의 자유를 개인에게 줄 수 밖에는 없을 겁니다. 

따라서, 남북 모두 새로운 혁신적 비지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한 혁신형 창업가들이 개발, 육성해야할 필요성가 절실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창업가 세력은 기존의 인프라 개발을 위한 재벌의 대규모 투자나 인건비 절감을 통한 원가 경쟁을 위한 개성공단 모델이 아니라, 남북한 서로의 요구와 장점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다른 지역 통합체들을 무대로 비지니스를 하는 과학기술바탕의 작지만 강한 중, 소기업의 출현이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참조4: "북한과의 교역은 '무역'이 아니라 '교류'입니다">

[만민보] 남북교류사업에 앞장선 영화감독 정한우씨



교육분야 먼저 교류하고 통합하자.   

법륜 스님의 '통일 첫 세대 어떻게 기를 것인가?' 에 대한 답변과 움트고 있는 미래 통일 첫 세대를 알아보면서,통일을 위해서는 교육 분야 먼저 교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첫째, 고대사, 독립운동사, 그리고 민족 고유의 휴머니즘 교육이 선결되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륜 스님 말씀처럼 남북간 '이해'와 과거 중국, 일본, 미국과의 일방적 관계를 대등한 독립적 관계로의재정립을 위해서는 '고대사와 독립운동사의 재정립이 필요한데 이는 남, 북한의 현재 교육체제와 내용으로는 이러한 선결조건이 만족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고대사와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 및 역사교과서 개정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근대 사상이 아니라 한민족 고유의 휴머니즘을 재발굴하고 이를 공동의 비전으로 삼아나갈 수 있도록 역사교육분야 먼저 교류하고 통합해야 할 것입ㄴ다.   


둘째, 과학기술을 바탕으로한 글로벌 창업가 교육을 남북이 함께 해야 합니다.  

앞에 말한 것 처럼, 인문사회분야 교류 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치 사상과 종교 등에서 자유로운 과학기술분야의 교류가 보다 쉬워보이며, 또한 남북교류를 바탕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다른 경제공동체에 수출할 수 있는 경공업 (Manufacturing) 제품을 개발하고 무역할 수 있는 글로벌 창업가 교육이 남북이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남한의 경우 70년대 80년대에 이러한 수출지향형 경공업 발전 경험이 있고, 북한 또한 여전히 우수한 과학기술분야 인재들이 있으므로, 둘의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통합된 교육과 지원을 통해 혁신형 창업가들을 함께 길러내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중국 학생, 일본학생,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있는 반면 북한 학생은 전혀없습니다. 전세계 모든 학생들이 있는데 제나라 학생인 북한 학생들만 없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 또한 과학기술분야 교육을 위한 투자와 장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남북의 과학기술과 창업가 교육을 위한 공동노력이 절실합니다. 


셋째, 한민족 교육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합니다.  

평양과학기술대학과 연변과학기술대학의 경우과 같이 지금 현재 남북 교육 교류는 재미 한인 과학기술자들의 개별 노력으로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한간의 갈등의 골이 깊은 관계로 같은 민족이면서 객관적으로 남,북한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할 교수, 교사로 전세계에 있는 다양한 한민족 교육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분들을 초빙하고 그 분들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꼭 미국에 있는 한민족 선생님이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등지에서 공부하신 너무나도 많은 한국인 선생님들이 있는 바 공통의 언어인 한국어로 남,북한 학생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 창업 분야 교육을 시킨다면 남도 북도 모두 쓸모없는 갈등은 줄이면서 보다 세계무대에 통할 수 있는 글로벌하고 실질적인 교육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법륜스님께서 강의 도중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승려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며, 더구나 같은 피를 나눈 북한 동포들의 어려움을 그냥 보고 넘길만큼 독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그저 가까운 내식구, 내친적, 내이웃이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법륜스님의 이 말씀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믿음과 원칙이 있슴을 배웠습니다. 

2010년 9월 25일
미국 UIUC에서 
최정환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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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서울경제 신문의  2010년 07월 29일 ["신입사원 재교육에만 2년"…글로벌 재도약 발목 잡혀] 기사에 대한 반론. 


"신입사원 재교육에만 2년"…글로벌 재도약 발목 잡혀


[창간 기획] 경제 百年大計 교육에서 찾는다
1부. 문제는 낡은 교육 <1> 성장엔진 움직일 인재가 없다
녹색산업·스마트폰·LED·원전등 새로운 성장분야 잇단 진출불구
기업들 핵심인력 부족에 골머리

"산업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대학교육 문제"


한국일보사 서울경제신문에서 창간 기획 특집으로 '경제 百年大計 교육에서 찾는다'는 기획 기사를 보고 매우 시의 적절하고 의미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제 1부. 문제는 낡은 교육'을 말하면서 기업들이 겪고있는 핵심인력, 특히 첨단 과학기술분야 인재들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대학교육을 그 근본 원인으로 문제제기 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학교육 보다는 기업교육이 훨씬 더 심각하고, 더욱 큰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현재와 같이 고도로 분화된 사회에서 개별 기업에서 요구하는 '능력' 이란 기본적 대학교육을 마친 이후 각 개별 기업 현장에서 개발되어지는 것이지, 대학이 모든 기업의 다양한 요구에 맞춘 개별 교육을 시킬 수는 없다. 

기사에서 사례로 든 사업분야를 예를 들어보자. 녹색산업, 스마트폰, LED, 원전 및 플랜드, 그린 에너지, 차세대 자동차 기술의 핵심 인재와 이런 핵심인재들이 가져야 할 '능력' 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개별 기업현장에서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개발 능력, 생산 기술, 또는 경영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학에 이런 산업 현장이 있는가? 아니면 대학에서 이런 산업 현장을 옮겨놓은 실습공간이라도 있는가? 

인재개발 분야에서 통용되는 10:20:7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10%의 교육, 20%의 평가, 그리고 70%의 실무경험을 통해 기업 현장에서 인재가 개발 된다는 기업 현장에서의 인재개발을 위한 법칙이다. [참조 1, 2]

다시 말하자면, 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작업장에서 90% 이상이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겨우 10%의 체계화된 교육 (물론 이것도 기업에서의 교육을 뜻하기도 한다)을 문제삼아 개별 기업들이 90% 이상의 책임을 갖고 개발해야할 인재들을 대학교육을 문제삼아 대학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둘째, 기업에서는 특정 분야 핵심 인재가 부족 하다는데 현재의 높은 취업 경쟁률과 상시적 정리해고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기사내용 중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자료를 인용하면서 "대표적인 신성장동력인 그린에너지 산업에서 오는 2017년까지 총 1만9,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전망이다. 문제는 부족한 인력 대부분이 핵심 연구개발을 담당해야 하는 고급인력이라는 점. 실제 석박사급 연구인력은 2만4,700명이나 모자란 반면 석사급 생산인력은 오히려 8,7000명이나 초과 공급될 것" 이라고 적시하며, 더불어 원자력 공학과는 국내에 6 곳에 불과하여 원자력 분야 핵샘 인재가 부족하다고 말하였다. 

일단 그린에너지 산업 분야에 석박사급 연구인력이 2만 4,700명이나 모자라다고 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러면서 석사급 생산인력은 8,700명이나 남아돈다고도 했는데, 석사도 대학원에서 기본적인 연구개발 능력 개발을 위한 연구 활동을 통해 충분히 연구인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데도 공급과잉이라고 지적한 것 부터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단 공급과잉이라고 하는 석사급 인력을 연구인력으로 전환하면 15,300 명의 연구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15,300 명의 그린에너지 산업분야에 대한 인력수요가 있다는 말이되고, 그린 에너지관련 분야의 취업은 수월하거나 아니면 활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이런 분야 대기업의 취업경쟁률이 낮다는 '사실'을 보기 어려운 것은 본인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런 사실이 있으면 정확하게 적시해 주길 바란다. 더불어 그린 에너지 산업에 필요한 인력의 '능력, 기술, 지식, 태도' 하다못해 전공이라도 명확하게 적시하길 바란다. 

기사 내용 처럼, '복합적 융합' 분야의 대표가 그린에너지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이 융합되어야 하는지 기업 측에서 명확히 해야 대학 교육도 그에 맞추어 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셋째, 기업은 늘 핵심인재가 모자란다고 하면서 대학교육을 문제삼는데, 그렇다면 기업은 대학교육 개선을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혹시 국가에 교육세를 성실히 내고 있고, 몇몇 대기업들이 대학을 운영하거나, 일부 대학에 건물을 지어 준 것을 가지고 대학교육 개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또는, 일부 이공계 학과에 기업 측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제시한다면 이 또한 기업이 대학교육에 대한 책무를 다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업이 대학교육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가정하에 정당한 문제제기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단지 기업이 당장 써먹을 인재가 없다고 해서 이를 대학에 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문제제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경험한 한국, 독일, 미국의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동 사례를 보면 독일의 경우 핵심 기술 인력이라 할 수 있는 Dip-ing (공학석사) 또는 박사는 반드시 논문을 작성할 때 기업의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시킨다. 학부 재학 중에 코스웍을 통해 기본 개념을 충실히 배운 후 대학원 진학해서는 약 1년간 학교에서 심화 교육을 받은 다음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업에 들어가서 현장의 문제를 가지고 대학에 있는 지도 교수와 함께 문제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논문을 작성하고 학위를 마치게 된다. 또는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기업측에서 실험실과 장비를 대학에 지원하고 대학에서는 연구인력을 지원해서 공동으로 성과를 만들어 나간다. 기업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첨단 기술과 연구라는 것이 유기적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독일과 약간 달라서 크게 두가지 영역에서 기술개발과 연구인력 개발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NSF, NIH 등 공공 과학재단들이 진행하는 중, 장기적 프로젝트 수행으로 창의적이고 도전적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인재가 길러지는 것이며, 또 하나는 기업으로 부터의 지원을 통한 중, 장기적 문제 해결 또는 새로운 제품 개발이다. 특히 미국 기업 측에서 요구하는 기술개발이란 것들도 미래의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 내지는 혁신적 제품 개발을 위한 공고한 학문적 뒷받침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창의적이고 중, 장기적 문제 해결 과제를 통해 미국의 대학 인재들은 당장 써먹을 '능력'이 아니라 혁신과 창의를 통해 미래의 새로운 경쟁력을 위한 핵심인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수많은 기업 프로젝트는 '당장 문제 되는 현안 문제' 해결에 촛점을 둔다. 지금 기업 현장에서 문제되는 시급한 현안 중, 인력 부족 내지는 그렇게도 문제 삼는 '이론' 적 뒷받침이 부족한 것들을 주로 대학의 연구자들에게 프로젝트로 제공하여 시급히 해결책을 내어 달라고 재촉하기 일쑤다. 이런 경우 촉박한 일정으로 인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튼튼한 이론이 뒷받침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기술, 제품, 아이디어' 보다는 프로젝트 보고서 작성에 허겁지겁하게 되면서 능력있는 인재들이 고갈되어간다. 이런 문제는 한국 기업들의 기업 문화와 더불어 한국식 기업교육방식을 대학에 강제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빨리 빨리, 당장 돈 되는" 것만 추구하는 현장 응용기술에 과도하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중, 장기적 인재개발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기업 측에서 인재개발은 등한히 한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종업원'만을 찾아 왔고, 그에 따라 기업 교육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핵심 인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만약 기업측에서 대학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들 기업 현장에서 필요한 핵심인재가 어떤 사람들인지 명확히 하길 바란다. 그리고,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이전에 기업에 맞는 인재 개발을 위한 기업 교육 먼저 되돌아 보고 개선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핵심 인재란 하루 아침에 찾아지거나 만들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기업내에서의 인재개발에 먼저 투자 하길 바란다. 

이렇게, 핵심인재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과 기업내에서의 중,장기적 인재개발을 위한 투자를 하는 귀감을 보인다면 대학교육도 그에 따라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대학교육 문제제기 이전에 제발 대학 교육에 제대로 된 투자를 해주길 바란다. 단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기업의 선진적, 혁신적, 창의적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대학에 인적, 물적, 문화적 자산을 투자해 주길 바란다. 

기업이 대학교육에 문제 제기를 했다면, 현실적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문제 제기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은 기업 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기업이 그토록 원한다는 "핵심 인력"을 기르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최정환, 

2010년 7월 29일, 

미국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Human Resource Development (인재개발)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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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Activity

[서경창간기획] 경제 百年大計 교육에서 찾는다


[참조1] 최정환 (2009), 교감의 리더십, 해피스토리.
 
[참조2] 70-20-10 rule for people development.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entry/The-70-20-10-Rule-in-Human-Resource-Development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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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1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10.08.11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임세원 기자님, 자세한 답변은 E-mail로 보내드렸습니다 (^^) 현지 인터뷰는 아니더라도, Skype 화상 채팅을 통해 얼굴 보면서 대면 인터뷰가 가능할 듯 합니다. 시의 적절하고 의미있는 시리즈 제작하시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임세원 2010.08.16 0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정환님
      안녕하세요 서울경제 임세원 입니다. 죄송한 말씀인데요. 제 메일이 튕겼는지 보내주신 답변을 못받았습니다.
      혹시 다시 한 번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why02000@gmail.com
      여기로 부탁드릴게요. 번거롭게 해 죄송해요
      08. 16 서울경제 임세원 010-8926-4245

  3. 2011.02.25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11.02.25 14: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조 1] 은 제가 쓴 책에 있습니다.

    최정환 (2009), 교감의 리더십, 해피스토리:

    인재개발 분야에서 통용되는 10:20:70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10%의 교육, 20%의 평가, 그리고 70%의 실무경험을 통해 기업 현장에서 인재가 개발 된다는 기업 현장에서의 인재개발을 위한 법칙이다.

  5.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12.01.23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정확한 10:20:70 rules in HRD는 아래 참조 자료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 Lombardo, Michael M. and Robert W. Eichinger (1996) The Career Architect Development Planner. Lominger Limited, Inc. p. iv. ISBN 0965571211.




어느 재벌 회장이 "인재 한명이 만명을 먹여살린다"라는 말을 하고, 그 분 밑의 전직 회장님께서는 평준화 교육 때문에 인재들이 양성이 안된다고 평준화를 해체하고 경쟁위주의 교육을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 말은 수없이 많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인재들을 발굴하고 기회를 제공하기 귀찮고, 돈도 많이 들어서, 또는 자신들의 현재 지위를 위협할까봐 하는 말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겁니다. 

조선시대 최대의 국난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 당시에 의심많고 협량하기 이를데 없던 선조임금과 그 밑에서 동인/서인으로 나뉘어 자기 당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느라 자기들 말만 잘 들었던 사람들만 관직에 등용했던 고위관료들에 의해 제대로된 인재가 등용되지 못하던 끝에. 임금과 고위관료들은 전쟁초기 파죽지세로 몰려오던 왜군을 막지 못하고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까지 몽진을 가고 명나라에 굴욕적 외교로 명나라 군대를 이땅에 끌어들였으나, 외국군대의 수탈이 극에 달해 여우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난 격이었던지라, 결국은 분노한 민중의 의병봉기와 몇 몇 뛰어난 장수들의 살신성인으로 7년이나 전쟁을 겪은 후에야 겨우 겨우 왜적을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무능한 정부와 당시 지도층들에 대한 백성과 민중의 후회와 한탄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시중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합니다.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끝냈으리라." [참조 1] 

모두 처음들어보거나 낯설게 들리는 이름들 일겁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당시 민중과 백성의 가없는 인재에 대한 '갈구'와 함께 이러한 뛰어난 인재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이런 저런 이유로 오히려 억압하고 탄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 소인배들에 대한 한탄과 원한이 담겨져 있던 것이지요.  


최근 인기영화 중 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실제 사건인 정여립 사건, 이몽학의 난을 배경으로 극적 재구성한 만화를 다시 영화화 한 것인데, 정여립 사건으로 수없이 많은 동인 세력들이 죽어나가면서 그나마 활동했던 몇 몇 인재들이 크게 죽어나갔고,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간에 있었던 이몽학의 난으로 인해 실제로 김덕령, 홍계남, 곽재우, 최담령 등 의병장들이 선조와 집권세력의 의심을 받아 결국 김덕령 장군은 자신이 죄없음을 알리기 위해 쇠줄을 세 번 끊고 세번 담장을 넘었다 들어왔다 하면서 자신이 힘이 없어 잡힌 것이 아님을 보이면서 결백을 주장했으나 지독한 고문끝에 장독으로 옥사하고, 최담령은 처형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이순신 장군등 뛰어난 무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까지 끝없는 의심의 눈초리와 위협을 가하면서 인재들은 국난에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겨우 겨우 나라를 지켜내고는 모두 죽어나가거나, 아니면 깊은 산으로 아무도 모르는 시중으로 몸을 숨기거나 하면서 나라의 인재가 씨가 말랐던 것입니다. 이런 사건 이후 조선의 인재들은 세상에 나오길 꺼려하면서 병자호란도 겪게되고, 결국은 일본에 국권을 넘기게 되는 국치를 맞게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재가 있었으나 쓰지못하고 오히려 죽였던 것이 벌써 500년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500년 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어느 재벌 회장의 말처럼 만명을 먹여살릴 인재 한명을 위해 오히려 나머지 만명의 인재 중 정말로 뛰어난 인재는 모른체 하면서 외국 유수의 학교에서 학위를 따고온 외국물 먹은 사람들만 인재랍시고 불러와서 써먹다가 자기들 입맛에 맛지 않으면 또 내치는건 아닌지요? 

그리고, 사교육 잘 받아 온갖 학력평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시험 잘치는 암기형 인재들만 좋은 대학가서 간판을 따고 이들에게만 좋은 직장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창의적 인재들이 될 수 있는 비암기형 인재들은 그냥 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최근 정치, 경제, 교육 분야에서 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자꾸 거론하곤 합니다만, 정작 인재를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거나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인재는 널리고 널려있습니다만,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보듯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리더를 찾아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500년 전 조선의 무능한 위정자들로 인해 인재가 죽어나가고 활용을 못했다면,뭔가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할텐데 500년이 지난 지금도 무능한 위정자들로 인해 우리 주변의 수없이 좋은 인재들이 활용되지 못하고 그냥 묻혀나가는 것에 대해 통탄해 마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인재를 기르는 것 뿐 아니라 어떻게 인재를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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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그림 



참조1: [조용헌 살롱] 도가(道家)의 최풍헌(崔風憲)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끝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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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2: [최풍헌]불가사의한 도력을 지녔던 신선

http://www.etorrent.co.kr/bbs/board.php?bo_table=commu_03&wr_id=56&sfl=&stx=&sst=wr_hit&sod=desc&sop=and&page=11

조선시대 선조 때의 뛰어난 신선이었던  최풍헌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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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3: [구봉 송익필]  

구봉은 1534년 여산 송씨, 송사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7세 때 ‘산가모옥월참차山家茅屋月參差 - 산 속 초가집에 달빛이 어른거리네’라는 싯구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20대에 이미 ‘8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시와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당대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는 서로의 학문적 경지를 흠모해 평생에 걸친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일찍이 교육자의 길에 들어, 후일 예학의 대가로 크게 이름을 떨치는 사계 김장생, 수몽 정엽, 기옹 정홍명 같은 제자들을 배출해 냈다. 그러나 구봉은 신분차별이 엄격하였던 조선중엽에 태어나 종의 자손이라는 신분상의 문제와 동인들의 방해로 끝내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구봉의 외 증조모는 안씨 집안의 종이었다. 그의 아버지 송사련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외삼촌인 안당의 일가를 몰락시켰고, 신사무옥辛巳誣獄이라 불린 이 사건은 가문과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당시 유생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았다. 송씨 일가의 이러한 약점은 자식인 송구봉의 대에 이르러, 동인들에 의해 불거지게 된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사노(私奴:남자 종) 송익필을 체포하라!’는 요지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가 일찍이 관직을 포기하고 교육자로 나선 것도 이러한 출신상의 배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송구봉은 학문만 대단했던 것이 아니다. 번개가 치는 듯한 안광과 당당한 풍채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기백으로 인해 많은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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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http://blog.naver.com/corea2043.do?Redirect=Log&logNo=20000497890

[구봉 송익필, 율곡 이이, 그리고 이순신]  

동쪽 하늘의 두 별 

지금으로부터 삼백년 하고도 십여년 전, 조선 14대 선조대왕 시절의 이야기예요. 소년장사 김덕령이 한참 씨름판을 휩쓸던 무렵쯤이나 될까요. 그때 한양에는 신사임당의 아들 이율곡 선생이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어요. 이율곡은 학문은 물론이고, 별자리를 보는 눈이 남달랐어요.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세상일을 두루 헤아리곤 했지요. 하늘의 별 가운데는 율곡의 별도 있었어요. 동쪽 하늘 복판에 떠서 북두칠성보다 밝게 빛나는 별이었지요.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었어요. 동쪽 하늘 외진 곳에 숨어서 홀로 그윽하게 빛나는 별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율곡은 그 별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저 별도 조선의 인물이 분명한데, 그 임자가 도대체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조선 천지의 이름난 사람 가운데 그 별의 주인공을 찾을 수 없었어요. '숨어 살고 있는 인재가 분명해. 내가 한번 찾아봐야겠어.' 율곡은 벼르던 끝에 어느 날 그 별의 임자를 찾아 여행을 떠났어요. 나라에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시골 선비처럼 조촐히 차려입은 채로 하인도 없이 말을 타고서 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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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http://santa21.com/gnu3/?doc=bbs/gnuboard.php&bo_table=zs_ksd&page=8&wr_id=215

[북창 정렴]배우지 않아도 하늘 아래 모르는 것이 없어

정북창(鄭北窓, 1506∼1549)의 본관은 온양으로 조선조 중종 즉위년(1506년)에 정순붕(1484~1548)과 완산 이씨 사이에 6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을사사화(乙巳士禍, 1545년)’를 기반 삼아 우의정까지 출세했던‘을사 삼간(三奸)’중 한 명이고, 모친은 세종의 장형(長兄)인 양녕대군의 증손녀이다.

정북창은 태어나면서부터 영적으로 아주 뛰어났으며 천문, 지리, 음률, 의약, 수학, 한문, 복서(卜筮) 등 배우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하늘아래 있는 온갖 학문에 뛰어났으며, 스승 없이 혼자 터득하여 깨쳤다고 전해진다(장유의「북창고옥양선생시집서」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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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도교사상의 한국적 전개』한국도교사상연구회, 아세아 문화사『이야기 인물 한국사 2』이이화 저, 한길사『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강효석 편저, 화산문화『한국인의 과학정신』박성래 저, 평민사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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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11.01.11 2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진짜 창의적 인재는 언제나 세상의 휘황찬란한 간판뒤에 숨어있기 마련이지요. 때를 못만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불우한 인재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자신에게 맡는 일을 분담할 수 있었으면 바랄 바가 없겠습니다.

  2.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13.11.05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사람이 자기 타고난 능력을 맘껏 뭇사람과 뭇생명을 위해 쓰여지는 세상이 오기를 두손모아 간절히 기원하곤 합니다만, 그 날이 올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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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명박 대통령 리더십이 위기라고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 문제로 야기된 촛불집회, 금강산 민간인 피격사망사태, 일본의 독도 침탈 문제, 낙하산 인사문제로 인한 반발, 서울시의회 매관매직사건, 에너지 가격 폭등과 환율로 인한 경제위기, 급격히 상승하는 물가와 추락하는 부동산 가격 등등 수없이 많은 사회 현안들이 수면위로 떠올라 현 정부의 리더십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명박정부는 인적쇄신과 다양한 정책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고있으나 여전히 문제 해결은 어려워 보이기만 하고, 갈수록 갈등의 정도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가 "소통의 부재" 에서 왔다고 합니다만, 왜 소통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는 잘 말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리더십의 위기는 유가상승, 외교마찰 등의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내부적 요인 특히, 정신적 DNA (Value Meme)의 부적합성에서 온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차드 도킨스에 따르면, 인간은 물리적 유전자인 Gene 과 함께 그들의 문화,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정신적 유전자인 Meme 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외부적 환경요인에 따라 정신적 유전자가 형성되며 발전 또는 퇴보해 나가는 등 동적 메카니즘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유전자는 집단간에 그리고 세대간에 자기복제를 해나가면서 확산하고 소멸하는 등 생체 유전자 (Gene)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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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http://coachingvision.info/chartsworksheetsmodels/spiral-dynamics-model/]

Don Beck 박사의 Spiral Dynamics에 의하면 정신의 DNA (MEME)는 총 8 단계의 발전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한 개인이나 집단에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게 됩니다. 가장 낮고 오래된 인류의 정신적 DNA 부터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생존 유전자 (베이지색): 오직 생존만을 위해 본능을 발휘함 (100,000년전 출현)

2. 주술/부족 유전자 (보라색): 자기 부족/집단의 안녕만을 추구함 (50,000년전 출현)

3. 자기중심 유전자 (빨간색): 자신의 이익과 안녕만을 위해 남을 착취함 (10,000년전 출현)

4. 권위주의 유전자 (파랑색): 정당한 권위 (종교, 권력)에 순종하여 안정을 추구함 (5,000년전 출현)

5. 전략과 성취 유전자 (오렌지색): 과학과 전략을 통해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추구함 (300년전 출현)

6. 소통과 평등 유전자 (녹색):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협력을 통한 공동체 이익을 추구함 (150년전 출현)

7. 통합 유전자 (노란색): 온전한 삶과 상호 상호 이익을 추구함 (1950년대 출현)

8. 홀리스틱 유전자 (청옥색):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조화를 통해 존재의 완전성을 추구함 (1970년대 출현)


이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권의 정신 (가치) DNA를 분석해 보면

1. 생존 유전자: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며 생존을 위한 본능 극대화 됨

2. 주술/부족 유전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 영남정권을 통해 자기 부족(지역)의 만의 이익을 추구해 옴

3. 자기 중심 유전자: 노동자를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한국 경제 개발 모델 구축함

4. 권위주의 유전자: "까라면 까" 라는 권위주의 군사독재 문화 체재에 순응하였고 더불어 보수기독교 가치관에 몰입되어 있음.

5. 전략과 성취 유전자: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전술을 발휘함.

6. 소통과 평등 유전자: 정당한 민주적 절차와 토론보다는 권위와 사회적 계층화를 추구함

7. 통합 유전자: 상호이익보다는 타인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함

8. 홀리스틱 유전자: 정신과 영혼의 조화 보다는 육체적 안녕을 위한 권력을 추구함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면, 이명박 정권의 정신 DNA는 전략과 성취/권위주의/자기중심/부족/생존 유전자만 가지고 있고, 그 위의 소통과 평등/통합/홀리스틱 유전자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모두 퇴행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한국사회를 주로 구성하고 있는 20~40대의 경우 70~9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통합/소통과 평등/전략과 성취 유전자가 강한데, 따라서 이들의 현재 이명박 정권과는 정신적 DNA가 수준이 맞지 않고 이러한 정신적 DNA 수준의 차이로 이명박 정권이 한국의 주류 세대에 부적합한 리더십이란 것을 알게 된 주류 세대 (20~40대)가 저항하게 되면서 현재의 모든 갈등이 표출되어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DNA의 부적합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력이나 탄핵 또는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출범한 민주 정권에 대해서는 정당하거나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리더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요?

아마도 두가지 방법이 있을 듯 합니다.

첫째, 한국 주류 세대의 정신적 DNA인 소통과 평등 유전자를 가진 인재를 등용하여 적합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이명박 정권의 인적 구성을 보면 초기 구성 보다 더욱 퇴행적 DNA를 가진 인재를 등용하는 것 처럼 보여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 질 듯 보입니다. 따라서 인적 구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금이라도 적합한 정신적 DNA를 가진 사람들을 등용하는 것이 시급해 보입니다.

둘째, 이명박 정권이 가진 최상위 유전자인 전략과 성취 유전자를 최대한 발휘는데 집중하면서, 그 이하 수준의 정신적 DNA인 권위주의/자기중심/부족/생존 유전자를 최대한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을 선택한 국민들의 바람은 뛰어난 전략 전술을 수립하고 집행하여 지금의 경제위기를 타개하라고 한 것이지, 그들의 권위나 자기중심적이고 그들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라고 한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하위 정신 유전자들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그들의 장점인 전략/과학 분야에 올인하는 것이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는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병박 대통령의 리더십 위기는 정신적 DNA 부적합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생겨났고 외부 환경을 봐도 소통과 평등/통합적 유전자가 강한 미국의 새로운 정권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권위주의/자기중심/부족 중심적인 일본과의 갈등과 여전히 부족/생존 유전자 상태에 머물고 있는 북한과의 갈등 등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에 먼저 내부적으로 대통령의 정신적 DNA를 바꾸거나 자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 하려는 노력을 하는 한 편 인적구성을 각 현안별 정신적 DNA에 맞는 사람들로 바꾸어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계속 이명박 정권의 정신적 DNA가 부적합한 상태가 유지된다면 더더욱 큰 리더십의 위기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참고문헌:
1. 대통령 리더십 흔들리지 않았다면…, 매일경제 2008년 7월 21일
 http://news.mk.co.kr/newsRead.php?sc=40200001&cm=%EA%B8%B0%ED%9A%8D%C2%B7%ED%8A%B9%EC%A7%91%20%EC%8B%A0%EB%AC%B8%EA%B8%B0%EC%82%AC&year=2008&no=452660&selFlag=&relatedcode=&wonNo=&sID=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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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수논객 이상돈 “이명박 위기, 하야(下野) 직전”,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8년6월22일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83407#

more..



3. MEME (정신의 DNA), Richard Dawkins
http://en.wikipedia.org/wiki/Meme

4. Spiral Dynamics, Beck, D. Edward (1996). Balckwell publishing, MA, USA.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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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정모 2008.07.22 2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켄윌버의 통합적 발달에 관한 그림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도표와 내용을 토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분석은 흥미롭네요. 저도 켄 윌버의 이론으로 리더십에 대한 분석을 해 보려고 하였는데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제 생각은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 DNA가 변화될 것이라는 것은 거의 가능성이 희박해보입니다. DNA의 변화는 삶을 통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외부충격을 통한 진화를 거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명박이라는 한 개인 (켄윌버의 I의 영역) 보다는 현 한국사회 구성원 (We의 영역, 좌하상한) 들의 집단적 인식의 진화를 기대하고, 거기에 가능성을 두는 것이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지난 민주정부 10년을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혜택을 누리면서 (거시적 성찰입니다만) 진화를 멈춘듯합니다. 통합적 진화의 정지는 인간의 기본적 욕망과 두려움 (20대는 취업등의 생존적 두려움, 30~40대는 경제적 욕망과 상대적 비교의식) 을 자연스럽게 증폭시키며 그에 대한 가치적 회의와 나태로 인하여 성찰보다는 욕망의 발현체로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20대는 투표권을 포기함으로,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막연히 개인의 취업을 해줄 것 같은 기대, 30~40대는 주가나 개발, 부동산 등의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이제 한국사회는 스티븐 코비가 습관1에서 언급하듯이 외부(나랏님 의식) 가 개인에게 무언가를 다 해주는 의식에서 진화하여 내부로의 주도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의 진화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교육(민주시민교육, 평화교육, 리더십 훈련)은 과거 민주화 투쟁에 못지않은 현 시대의 가장 필요하고, 진보적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많은 얘기를 했네요. 또 나누기로 하지요.

  2.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08.07.22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목사님..답글에 감사드립니다. (^^);

    일단 이 글은 Ken wilber 가 아니라 Don Beck 의 Spiral Dynamics 라는 개념으로 부터 분석해 본 것이구요, 허긴 최근 Ken wilber의 4 Quadrant 와 Spiral Dynamics 를 통합하여 보다 발전적인 개념의 통합 이론이 되었지요.

    제 생각에도 현재 새로운 개념을 총괄할 수 있는 통합적 리더가 절실하게 필요하고 그런 인재가 많이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민중에 면면히 전승되어온 오랜 심신수련전통과 활달한 기운에서 그 가능성을 찾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목사님과 늘 좋은 나눔 계속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3. 김정림 2008.07.27 05: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부분을 건드리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읽지 않으려고 망서리다가 다가서보니 '정신적 DNA의 부적합성'이라는 처음 대하는 용어가 나오네요, 그리고 8가지의 유전자가 나오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미 대안(적합한 인재등용, 상위 유전자 발휘, 하위 유전자 억제) 도 나오구요, 저는 아직 읽는 수준이지 저의 이론을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므로 박사님의 글을 그냥 즐깁니다,

  4.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08.07.27 1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직접 정치적 부분을 쓰겠습니까? (^___^); 다만 리더십 연구와 이해 차원에서 하나의 사례로 적어본 글이지요. 일명 낚시(?)라고 해야 하나요...

    어쨌던, 리더 그룹들의 전반적 DNA 수준에 따라 그들의 행동양식이 결정된다고 하는 새로운 통합적 접근법을 가지고 분석해봤는데....역시나...나름 재미있는 글이 되네요...^^

  5. 박재기 2008.10.18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외교학도로서 인터넷을 검색하다 와봤는데 정말 신선한 글이었습니다.
    게다가 몇일전에 읽은 이기적 유전자도 언급되어서 더욱 솔깃하면서 봤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6. Favicon of http://leadershipcenter.tistory.com BlogIcon Jeonghwan Choi 2008.10.18 2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졸렬한 글 재밌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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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리더십 분석

"Change everything except for your wives and children"

– Kun-Hee Lee, SAMSUNG, Chairman, Frankfurt Declaration, June 07, 1993 –

Leipzig Graduate School of Management의 MBA 수업 중에 Leadership, Business, Society and Ethics...라는 수업의 Final Report로 제출한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리더십 분석자료입니다.

글자수가 1500자로 제한되어 있어서 혹여 내용 중에 미흡한 것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나름대로 최대한 성의를 다해 객관적으로 분석해봤습니다. 다행히 리더쉽 담당 교수님이신 Manke 교수님이 좋아하셨고, 문맥을 상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 자료를 약간 수정해서 외부에 Publish 해도 되겠냐고 제안하셔서 혼쾌히 동의했습니다.

분석에도 나와있습니다만, 꿈꾸는 자, 혁신가, 실행가, 학습자 항목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늘 문제가 되어왔던 삼성 이건희 (전) 회장과 그 가족들의 경영 승계권을 둘러싼 비 윤리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적음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삼성이라는 기업집단에 크나 큰 손해를 끼쳤습니다.

물론 한 개인이 위의 분석에서 제시한 모든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겁니다. 하지만, 크게 떨어지는 조건 (이건희의 경우 도덕성과 인본주의적 사고 부족) 때문에 결국에는 크게 문제가 되었고, 결국은 회장 자리에서 내려온 채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리더는 다각적이고 통합적 사고와 능력을 갖추어야 제대로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윤리, 도덕이 성공을 만들어 내지는 않습니다만 이것이 없으면 혹여 짧게 성공할 수는 있어도 결국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그 일가로 부터 배우야 할 것은, 아무리 비전이 출중하고 다른 능력이 뛰어나도 확고한 윤리도덕에 바탕을 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이 없다면 결국은 몰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키아나 토요타 등 패밀리 들이 대기업 집단을 이끌고 있는 가족경영 기업들과 삼성 로얄 패밀리들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삼성 투자자들과 여러 Stake-Holder와 국가에서 근본적으로 삼성 로얄  패밀리들의 가치와 비용 그리고 존재이유에 대한 고민을 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 영어로 적을 수 밖에 없었던 점은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한글로 번역된 "삼성 이건희 (전) 회장 리더십 분석" 은 제가 쓴 책 "교감의 리더십에 있습니다. 



"교감의 리더십" 도서구입안내


예스24: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3248641&CategoryNumber=001001025001001 





J.H.Choi
2008년 7월

[Retrieved on 2005 June]

Introduction

In July 2004, when Business Week published its survey of top brands in the world, Samsung, one of South Korea's best-known business groups, was 21st on the list. Samsung had also surpassed its rival, the Hyundai Group, to become the largest chaebol in South Korea. Samsung's flagship company was Samsung Electronics, the world's leading manufacturer of dynamic random-access memory (DRAM) and other memory chips, and a global player in electronic gear including LCD panels, DVD players, and cellular phones. 


By the 1980s, Samsung was exporting electronics products under its own name. When Lee I died in 1987, his son Kun-Hee Lee (Lee II) assumed control (see Appendix1). In 1990, after years of importing technology and spending heavily on R&D, Samsung became a world leader in chip production. In 1993, Lee declared “SAMSUNG New Management” at Frankfurt. This declaration is the first step to be a “Global Leader” in IT industry.
In this article, by using the leadership principles which have been introduced by lecturers in LBES classes, Lee’s leadership is presented and analyzed.

Principles of Leadership

Many researchers introduced various “Leadership Principles” and also many practitioners such as GE, HP, AT&T developed specific principles and applied them in practice. HHL’s Leadership and Business Ethics and Society classes provided theoretical and practical approach for addressing principles of leadership. Each class had unique lecturers who emphasized different leadership principles. These leadership principles are presented as Appendix 2. The principles are: Be a Dreamer, Be a Learner, Be a Humanist, Be a Futurist, Be a Planner, Be a Doer, Keep Principles, and Be an Innovator.

Be a Dreamer

In the Genesis, Joseph story tells us the importance of being a dreamer as a leader. Having a dream is quite important to be an effective leader. Vision or mission is the realization of dreams. Making a clear goal is one of the essential management skill .
When Lee II took over Samsung as a Chairman on 1987, the group was recognized in the global arena as just a mid-tier vendor of me-too products and was no match for SONY. Lee II dreamed to overcome this situation and started changing Samsung as a global leader in IT industry.

Be a Learner

Dr. Saalbach said “My attitude determines my altitude” which were emphasizing the importance of open-minded attitude for learning from others.
In 1990, after years of importing technology and spending heavily on R&D, Samsung became a world leader in chip production. Encouraged by the Lee II, Samsung agreed to cooperate with another chaebol Goldstar (which became the LG Group) to obtain foreign technology to develop liquid crystal displays. He did not hesitate to learn from others even if it hurt the pride of Samsung. A few years later, LCD division became a one of biggest cash cow.

Be a Humanist

Dr. Suchanek pointed out the one-sided Friedman’s explaining fo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Maximizing Profit is not enough to guarantee the sustainability of society. He suggested the integrity approach, maintaining the license to operate, to explain the conflict between moral to profit. To secure the license to operate, corporate should invest tangible and intangible resources.
Samsung has invested lots of not only tangible assets (1.07bil. $ - 29% of profit, invested to the community activities) on 2001 but also intangible assets such as social welfare program, environmental preservation and cultural and arts programs to take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On the other hand, Lee II has been criticized for keeping “No labor union” policy and transferring his throne to his son. These controversial unethical actions undermine the real value of Samsung.

Be a Planner

Sensing and planning for the future is very critical to a leader. Lee II had a good sense of changing Samsung from bureaucratic organization to fast moving one during 1990’s. But, he failed to anticipate the paradigm shift in automotive industry. From the first step in 1994 to the first car rolled off the assembly line in 1998, Samsung Auto suffered operating losses and crushing interest charges. Within a few years, Samsung was forced to divest the car business for a fraction of its initial investment.

Be a Doer

Everybody can make a plan but only few people can do it. When Lee II declared the “New management” at Frankfurt, He started his presentation at 8 p.m. stressing the pressing need to reinvent the group via bold changes and quality management and the event continued nonstop for about seven hours. Since then, Lee II himself had spearheaded the group-wide efforts to shift its focus from sales and quantity to quality, setting defective products as enemy No.1. When he did change the culture, he used “Empowerment” to employees.

Be an Innovator

In 2001, Dr. Hwang, CEO of Samsung Electronics, should decide the type of Flash memory. NOR type was quite popular in the market, but Lee II ordered changing it to NAND type. He also refused the joint-venture offer from TOSHIBA, which means he should take all risks to innovate the memory industry standard.
Now Samsung’s NAND Flash Memory is the dominant memory chip of Mobile Digital Appliances in the world.

Measures of Leadership

Kosestenbau suggested the Leadership Diamond model , and Kouzes and Posner measured the characteristics of admired leaders . In this article, six leadership principles are presented and applied at Kun-Hee Lee to measure his leadership effectiveness.

Figure: Leadership Measures of Kun-Hee Lee

In the figure, Lee II is a good “Dreamer” and “Innovator” but his relatively Low Humanist principle (i.e. aggressive attitude to stake-holders) undermines the effectiveness of his strong leadership.

Conclusion

In LBES classes, theoretical and practical leadership practices were presented by lecturers. Six leadership principles were extracted and applied at Kun-Hee Lee, Chairman of Saumsung to analyze his leadership. Lee II is a good dreamer and innovator, which makes a great success in IT industry. But his not be a good humanist makes him be challenged from society.
The leadership principles which were lectured in LBES classes should be kept in mind for every young talent who hope to be a great leader in his/her future career.

References:

1. Peter Drucker, “What Makes an Effective Executive,” HBR June 2004
2. Jim Collins et al, “Built to last: Successful Habits of Visionary Companies”, Wharton Forum, 1996
3. Slater, “The GE Way”, Fieldbook, 2000
4. S.J. Lee, “HP Competencies Model”, Strategic Leadership, 2005
5. Takao Kato, “The Productivity Effects of Participatory Employment Practices: Evidence from New Japanese Panel”, Industrial Relations, Oct. 2002
6. Andreas Suchanek, “Is Profit Maximization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Pies, M. Leschke (eds.,2004)
7. www.samsung.com – Community Relations
8. Montly Joongang, “Interview with Dr. Hwang, CEO of Samsung Electronics”, Nov. 2004
9. Koestenbaum, “Leadership-The Inner Side of Greatness”, Jossey-Bass, 2002
10. Kouzes and posner, The Leadership Challenges, 2002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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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여행기 그리고 하늘함 도인 이야기 


2008년, 6월,  최정환




아...아...백두산...!! 하늘이 열리다. 

모든 산들을 저 아래에 두고/몇억만년 지나도록/아직껏 이것은 산이 아니었다

오 너 백두산/그토록 오래된 나날이건만/새로이/네 열여섯봉우리 펼쳐라/장군봉 망천후 사이/성난 노루막이 비버처럼/가까스로 날라가버릴 몸뚱어리 버티고 선/내 불쌍한 발밑조차/보이지 않아 캄캄하지만/수많은 어제였던 오늘이었고/내일이어야 할 오늘이었다/활짝 펼쳐라
여기 억만년 세월의 가슴 있다면/그 가슴 삼아/열여섯봉우리/네 이름을 부른다열여섯봉우리/스물여섯봉우리에 걸어/이 나라 시원 속에서/다시 태어나는/너를 부른다

목 놓아/너를 부른다/푸른 피 엉겨/푸른 피 엉겨/너를 부른다

[고은 시, 백두산 중 발췌]


숨쉬는 된장으로 생명평화운동을 하는 연화촌의 민들레 마을을 떠나, 두어 시간을 달려 백두산에 가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용정을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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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중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대성중학은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님, 그리고 우리나라 최조의 영화인 "아리랑"을 만든 라운규 선생 등 일제강점기 수없이 많은 독립지사 및 문인, 사상가, 예술가를 길러낸 곳입니다. 아래 시비는 현 용정 중학교 내에 세워져 있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새겨 놓은 것입니다.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갈망했던 푸른 청년 윤동주가 이곳 용정에 있는 대성 중학에서 건물에서 그 시적 감수성과 고결한 정신을 길렀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선배를 잊지않고 남의 나라에서도 나랏글을 잃지 않고 있는 이곳 용정 중학교를 중심으로한 한민족의 그 끈끈하고 강한 자부심과 열정에 다시 옷깃을 여며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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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중학옛터는 지금 기념관으로 변해있는데 이곳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친숙한 분의 어릴 적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바로 통일 운동의 대부라고 할 만한 늦봄 문익환 목사님 이십니다. 지금도 문익환 목사님께서 1987년 민주화운동을 이끄시는 과정에서 "통일은 다 되었어요, 통일은 다 되었어요" 라고 힘차게 외치시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저 가녀리고 곱상한 외모에서 어찌 그런 강한 울림을 내어놓으시나 궁금했었는데, 여기 용정에 대성중학교에 와보니 그 기운이 모두 만주의 드넓은 기운과 문익환 목사님이 이곳에서 공부하실 당시 한국의 혼이 그대로 이어졌던 이곳 용정의 정신이 문익환 목사님을 그렇게도 크고 아름다운 사람이 된 원동력이었구나라고 바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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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푸른솔은~~ 으로 시작되는 "선구자"의 배경이기도 했던 용정에 있는 일송정을 저 멀리 돌아 돌아 이제는 백두산을 향해 나아가서 이윽고, 백두산 아래 첫 마을 이도백하를 지나 백두산 서쪽 초입에 도착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중국영토에 있는 이도백하와 서쪽 백두산 초입은 더 이상 한글이나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온통 중국말과 장백산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중국식대로 난개발되어 이곳이 정녕 한민족의 성지인지 그냥 관광지 인지 모를 정도로 많이 훼손되어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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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 백두산 초입에 보니 이곳 백두산 동물들을 박제하여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10위안을 받는 곳이 있어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단군신화에 보면 곰이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고 정성껏 기도를 하여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 환웅님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설화가 아닌 다른 역사에 보면 원래 웅녀는 아래 아 "곰/감"을 써서 "곰녀/감녀"라고 한 것인데 이 "곰/감"은 우리나라 고어로 신령스럽다/영험하다라는 뜻으로 웅녀는 "신령스런 여인"으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고어인 "곰/감"은 오히려 일본말에 남아 있는데, 일본말로 신(神)을 말하기를 "가미" 라고 하는 바 이는 원래 우리나라 고어에서 파생되어 나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곰이 변해 웅녀가 되었다는 곰 설화보다는 원래 "신령스런 여인" 이라는 의미로 우리 민족의 어머니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백두산 호랑이는 우리나라 민족에게 늘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백두대간을 따라 만주와 한반도 전역에서 수없이 많은 전설과, 민담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우리민족의 사내들에게 그 용기와 기백을 심어주었던 이 신령스런 동물이 이제는 멸종위기에 처해 사람들의 손에 그 운명이 놓여있다고 하니 참으로 마음이 짠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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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초입에서 버스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간 후, 다시 지프차로 갈아타고 산을 오른지 어언 한시간여... 드디어 백두산 천지 바로 밑까지 도착하고 이제는 약 10여분만 더 걸어올라가면 바로 천지가 보인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중국 공안들이 각종 종교행위와 만세부르는 등의 행동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천지에 오르기 전 국선도에서 천지명산에 인사드리는 방식대로 하늘에 세번, 땅에 세번, 인간에 세번...총 아홉번 절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염원을 마음 속 깊이 다짐하면서 서서히 천지를 향해 걸어올라갔습니다.

백두산 정상은 원래 단 몇 분 사이에도 비가오고 안개가 끼고 개는등 날씨가 신출귀몰할 정도로 변화가 심하고 그마저도 6월에서 8월만 사람이 올라가 볼 수 있어 백두산 천지를 맑게 볼 수 있는 경우가 열에 하나 될까 말까 한다고 합니다. 저희가 인사를 드리고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안개가 자욱히 끼어 바로 앞의 사람도 보일까 말까 할 정도 였습니다. 게다가 백두산 천지의 봉우리에는 잘 쓸려내려가는 흙과 구멍숭숭 뚫린 화산암으로 이루어져있어 까닥 잘못하면 쭉 미끄러져 내려가기 일 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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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백두산 천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뿌연 안개로 저 멀리 까마득한 아래에 천지가 어렴풋이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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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신령스럽게도 갑자기 순식간에 안개가 갑자기 걷히더니 푸르다 못해 시퍼런 천지가 눈 앞에 펼져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보면 환웅임금께서 최초로 하늘을 여셨다는 개천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만, 참으로 하늘이 활짝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신령스럽고 영험한 경험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잘 모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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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리고 천지가 막상열려 눈앞이 툭 트이고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천지에 일단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크고 웅장한 장관에 압도당하고 까마득히 높은 구름 위 봉우리에서 저 아래로 아스라히 펼쳐진 절벽 밑에 푸르디 푸른 천지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이 산꼭대기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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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보니, 우리 민족 고유의 심신수련법인 국선도(밝받는 법)의 시작을 설명한 수도자들에게 대대로 전승되어온 하늘함 도인 (천기도인)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늘함 도인(天氣道人) 이야기

"아주아주 옛날, 지금부터 9700년전 일이다. 그 때 하늘함 道人이란 분이 계셨는데, 이 어르신께서 밝돌법을 세상에 전하셨단다.

하늘함 道人은 원래 백두산 근처에 있던 어느 마을의 촌장(村長)이었다. 그 분은 힘이 장사였고 지혜가 출중했다. 게다가 인품이 훌륭하여 마을 사람들을 잘 보살폈다. 당시 백두산 근처 마을들은 해마다 마을 대항 石戰시합을 벌였었다. 하늘함 道人의 마을은 이 시합에서 늘 우승했다.

세월이 흘러 하늘함 道人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되었다. 氣力도 많이 쇠약해졌다. 하늘함 道人이 힘을 못쓰는 바람에 어느 해엔 그 분네 마을이 석전(石戰)시합에서 지고 말았다. 시합에서 진 것은 마을 전체의 수치였다. 하늘함 道人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힘을 못 써 시합에 졌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패배의 책임이 모두 자기한테 있는 것 같았다.

하늘함 道人은 이미 늙은 몸이지만 힘을 다시 기르고자 했다. 한창때 용솟음치던 기력을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마을 일을 맡긴 다음 백두산으로 들어갔다.

백두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하늘함 道人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흐르는 세월을 한탄도 해보고, 누군가가 등 뒤에서 자기를 비웃는 것 같아 뒤를 돌아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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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웅장한 자태로 머리에 푸른 하늘을 이고 의연히 서 있었다.

하늘함 道人 자신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하늘함 道人은 크나큰 勇力을 기르기 전에는 결코 하산(下山)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백두산 깊고 깊은 산중에는 사람 자취가 전혀 없었다. 둘레가 몇 아름씩 되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졌고, 그 사이에서 갖가지 짐승들이 마음껏 뛰놀았다. 날짐승 길짐승 우짖는 소리가 번갈아가며 메아리쳤다.

하늘함 도인(道人)은 심호흡을 하면서 한발 한발 백두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쯤 가니 수련하기에 좋은 곳이 있었다. 위가 툭 트여 하늘이 시원하게 잘 보이고 가까이에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다. 하늘함 道人은 여기에다 움막을 지었다. 그리고는 바로 수련을 시작했다. 심신(心身)을 단련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젊은 시절의 기력(氣力)을 되찾기 위해 산비탈을 뛰어서 오르내렸고, 무거운 돌들을 들어올려 멀리 던지곤 했다. 마음을 닦으려고 정좌수행도 많이 했다. 한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온종일 그대로 있었다.

고요히 명상에 잠긴 하늘함 道人한테로 곰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종종 다가왔다. 어떤 놈들은 아주 바짝 다가와 하늘함 道人의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거나 발로 툭툭 건드렸다.구렁이들이 하늘함 道人의 몸을 타고 지나갈 때도 있었다. 그래도 하늘함 道人은 목석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손끝 하나 안 움직이고 정신을 오로지 한곳에 집중했다. 맹수들은 하늘함 道人 주변에서 얼마간 어슬렁거리다가 다른데로 떠나갔다.

하늘함 道人이 백두산에 들어온 지 어느덧 몇년이 흘렀다. 그 사이 하늘함 道人의 氣力은 한창 젊었을 때보다 몇 배 더 강해졌다.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졌고, 정신은 지극히 맑아졌다.

하늘함 道人은 만물(萬物)의 이치를 환하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됐다싶었다. 그래서 마을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늘함 道人은 자신이 기거하던 움막을 깨끗이 정리한 다음 하늘과 백두산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극진히 공경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듭거듭 땅바닥에 엎드렸다. 푸른 하늘과 드높은 백두산이 자신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 같았다.

하늘함 道人의 가슴에는 기쁨이 충만했다. 환희심이 온 몸에 두루 스며드는 것 같았다. 마음은 또 더할 수 없이 자유로웠다.

하늘함 道人은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왔다.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갑작스레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비워진 것처럼 공허해졌다. 그 비워진 곳으로 왠지 모르게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리던 고향, 보고 싶었던 사람들한테로 돌아가는데 신명이 안 나고 슬픔이 북받치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늘함 道人의 발걸음이 차차 무거워졌다. 그러다가 어느 개울가에서 우뚝 멈췄다. 하늘함 道人은 개울가 바위위에 걸터 앉았다. 문득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세상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부질없는 욕망 때문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가엾었다. 석전(石戰)시합에 졌다고 힘을 기르러 백두산으로 들어온 자신의 모습도 우습게만 보였다.

그까짓 시합에 지면 어떻고 이기면 어떤가. 명예를 얻어 뭣에 쓸건가. 옛날엔 명예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다 우매한 생각이었다.

하늘함 道人은 하늘을 보며 자신한테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명예에 집착하던 마음마저 떨치고나니, 세상에 돌아가 얻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 하늘함 道人의 입에서 [허허]하고 헛 웃음이 터져나왔다.

바로 그 때였다. 개울 아래쪽에서 하늘함 道人의 헛웃음에 화답하듯 커다란 웃음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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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하늘함 道人이 깜짝 놀라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개울 옆에 웬 소년과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년은 손에 커다란 물고기를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소년이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이런 얘길 했다.

"하하하, 참으로 어리석고 어리석구나. 앞으로 나갈 줄만 알았지 뒤로 빠질 줄은 모르는구나. 하하하"

소녀도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얘, 물고기야. 넌 이 개울물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줄 알지. 안 그래.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아득히 넓고 넓은 바다가 있단다. 널랑 그리고 가거라. 거기서 마음껏 뛰놀아라"

소년 소녀는 물고기를 개울물에다 도로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소년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인연이 있으면 백두산 상상봉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소년 소녀는 물고기를 놓아주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하늘함 道人은 꿈을 꾸고 난 기분이 되었다. 소년소녀가 물고기한테 해준 얘기들이 왠지 하늘함 道人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앞으로 갈 줄만 알고 뒤로 갈 줄은 모른다]

[어리석고 어리석다]

[넓고 넓은 물이 있다]

하늘함 道人은 불현듯, 그 얘기들이 물고기한테가 아니라 바로 자기한테 해 준 말임을 깨달았다. 마지막 말은 자기더러 백두산 상상봉으로 오라고 한 얘기가 틀림없었다.

하늘함 道人은 백두산 상상봉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며칠 후에야 상상봉 근처에 이르렀다.

하늘함 도인은 백두산 상봉으로 올라가면서 하늘을 향해 며칠 전에 보았던 소년소녀를 다시 만나게 해주십사 하고 간절히 빌었다. 왠지 모르게 그들을 만나면 더할 수 없이 귀중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크나큰 기대로 마음이 설레고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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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상봉은 깊고 깊은 고요에 휩싸여 있었다. 짐승들의 기척과 바람소리만이 가끔 한번씩 적막을 깨치고 들려왔다. 하늘함 도인은 신비함에 젖어 냇물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거대한 폭포를 지나서 한참 더 오르니 드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바로 천지(天池)였다. 거울처럼 맑은 천지의 수면에 백두산 상봉과 푸른 하늘이 신령스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늘함 도인은 天池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냇물에 몸을 씻었다. 정성스럽게 물을 끼얹으며 마음도 함께 닦았다. 그리고는 호숫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요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그의 마음은 천지의 물처럼 잔잔했다.

얼마쯤 그렇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하늘함 도인은 퍼뜩 눈을 떴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소년 셋이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전에 보았던 소년이었다.

소년들은 목욕을 하다가 물놀이를 즐겼다. 자맥질도 하고 물장구도 치면서 한참동안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가 모두 물 속으로 몸을 감췄다. 소년들은 한번 몸을 감추더니 좀처럼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하늘함 도인은 물 속에서 어찌 이렇게 오래 있는가 이상히 여기며, 소년들이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간이 자꾸 흘렀다. 몇 시간이 지났다. 하늘함 도인은 소년들이 모습을 안 나타내자 자신이 환상을 본게 아닌가 의심했다. 이 때 한 소년이 불쑥 물 위로 떠올랐다. 다른 두 소년도 뒤이어 모습을 나타냈다. 소년 하나가 [아이구 실컷 잤다]하면서 깔깔 웃어댔다. 하늘함 도인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물 속에서 잠을 잔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하늘함 도인이 넋을 잃고 있는데 소년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께선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며칠 전에 보았던 소년이 하늘함 도인한테 공손히 물었다. 소년의 음성은 아주 청아했다. 옥구슬 구르는 소리 같았다. 용모도 무척 수려했다. 눈에서는 아침 햇살 같은 광채가 뿜어나왔고, 얼굴은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하고 맑았다. 정면으로 마주보려니 눈이 부셨다.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았다.

"저는 백두산 아랫 마을 사람입니다.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늘함 도인은 일어서서 예를 갖추고 대답했다.

"아, 그러십니까"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냥 돌아섰다.

"제가 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함 도인은 황급히 소년을 불러세웠다. 소년이 되돌아서자 하늘함 도인은 얼른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는, 자기를 제자로 삼아 달라고 간곡히 청했다. 소년도 하늘함 도인한테 절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스승님 슬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저희가 할아버지의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여튼 저희 마을로 함께 가시지요. 어르신들께 여쭤 보겠습니다" 소년들은 하늘함 도인더러 눈을 감으라 하더니 그를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얼마 후에 소년들이 눈을 뜨라고 했다. 하늘함 도인은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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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함 도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소년들이 사는 마을은 별천지였다. 나무가 무성하고 꽃들이 만발했는데, 그 속에 드문 드문 집들이 있었다. 집도 나무도 꽃들도 밝은 광채를 뿜었다. 仙界가 틀림없었다. 숲속에서는 온갖 짐승들이 노닐었다. 토끼, 다람쥐, 사슴, 늑대, 호랑이... 갖가지 짐승들이 활기차게 뛰놀았다.

그런데 호랑이 늑대처럼 사나운 짐승들이 토끼 사슴같은 연약한 짐승들과 함께 뒹굴며 놀았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정자가 하나 있었다. 노인 몇 명이 거기에서 담소를 나눴다. 노인들의 용모는 머리만 흴뿐 소년들과 똑같았다. 하늘함 도인 일행은 정자의 노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을로 들어갔다. 소년들은 하늘함 도인을 마을의 어느 집으로 데려갔다. 아주 깨끗하게 잘 정돈된 집이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소녀 몇명이 그들을 맞았다. 소녀들의 용모도 소년들처럼 눈부시게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소녀들은 하늘함 도인 일행을 커다란 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에는 평상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한 소녀가 일행더러 거기에 앉으라고 권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소녀들이 차와 과일을 내왔다. 차는 기이한 향기를 풍겼고 과일은 기막히게 맛있었다.

과일을 먹고 잠시 더 앉아 있으니, 백발 노인이 소녀 둘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이 노인은 이곳 仙界의 큰 스승이었다. 이름은 [삼단]이라 했다. 소년소녀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삼단선인(仙人)에게 절을 올렸다. 하늘함 도인도 인사를 드렸다. 삼단선인(仙人)은 하늘함 도인한테 어떤 연유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물었다.

하늘함 도인은 자기의 과거를 소상히 아뢰었다. 그리고 귀한 가르침을 받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삼단仙人은 아주 잘 왔다며 [여기서 지내는 동안 잘 닦으라]이르고는 방에서 나갔다. 삼단仙人과 함께 왔던 소녀 하나가 뒤에 남아서 하늘함 도인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삼단 어른께서 여기에 머물 것을 허락하셨으니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실은 하늘함 노인께서 백두산에 들어와 수련하시는 동안, 한뫼가 항상 노인을 보살펴주었습니다. 노인의 눈에는 안 띄었지만, 한뫼는 늘 노인 곁에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노인께선 위험한 일을 한번도 겪지 않으셨습니다"

하늘함 도인은 얼른 자기가 맨처음 만났던 소년을 돌아보았다. 소년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가 바로 한뫼였다. 한뫼는 선동(仙童)이었다. 소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

"노인께서는 백두산에 들어와 3년 동안 하늘의 마음과 얼, 그리고 하늘 기운을 조금 얻으셨습니다. 이제 하늘의 이치와, 하늘과 하나되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내 마음이 곧 하늘 마음이 되고, 내 얼이 바로 하늘 얼이 되며, 내 기운이 하늘 기운으로 채워지면, 하늘사람으로 화합니다. 앞으로 한뫼의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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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부터 하늘함 도인은 선동(仙童) 한뫼를 스승으로 모시고 밝돌법을 닦았다. 이 밝돌법은 바깥 세상엔 없는 도법(道法)이었다. 한뫼는 아득한 옛날에 이 道가 창성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시운(時運)이 다하여, 이제는 극소수 인연 닿는 사람들만이 밝돌법을 닦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뫼는 정성을 다해서 하늘함 도인을 지도했다. 몇년이 지나자 하늘함 도인도 상당히 높은 경지에 올랐다. 몸에는 하늘의 진기(眞氣)가 충만하고, 마음과 얼은 푸른 하늘처럼 맑아졌다. 숨은 피부로 쉬었고, 물 속 불 속을 자유로이 드나들었다. 마음먹은대로 몸이 따라줄 정도가 되었다. 어느덧 몇년이 흘렀다. 하루는 한뫼가 하늘함 도인한테 이런 얘길 했다.

"하늘함께서는 이제 세상에 돌아가 큰일을 하셔야겠습니다. 인간세상은 육천년 동안 밝아졌다가 육천년 동안 어두워지기를 거듭 되풀이 합니다. 밝은 때는 참된 道가 두루 널리 펼쳐지고, 어두울 때는 사도(邪道)가 날뜁니다.

지금은 어두운 시대가 물러나고 광명시대가 돌아오는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참된 道를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 일을 하늘함께서 맡으셔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깨우쳐 주십시오. 온갖 탐욕과 번뇌에서 헤어나 광명시대를 맞이하도록 인도하십시오.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이리로 오십시오. 세상 사람들에게 이곳 이야기를 하셔선 안 됩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시면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실 겁니다. 그렇지만 꿋꿋이 견디십시오. 이곳 어르신들께서 도와주실 터이니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리하여, 하늘함 도인은 삼단仙人과 여러 선계(仙界)의 어른들께 하직인사를 하고 세상으로 나왔다. 仙界를 떠나 세상에 나와보니 무척 오랜 세월이 흘러가 있었다. 仙界에서 몇 년밖에 안 지냈는데, 인간 세상의 시간은 그보다 열배도 더 흐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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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함 도인은 자기가 살던 마을을 찾아갔다. 그런데 마을에는 낯선 사람들만 보였다.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옛날에 같이 살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승을 떠난 것이었다.

하늘함 도인의 집에도 낯선 사람들이 살았다. 집에 가서 주인을 찾으니 머리가 하얀 노인이 나왔다. 그 노인은 바로 하늘함 도인의 손자였다. 손자한테 나이를 물으니 팔십이라 했다.

하늘함 도인은 자신이 누구인가 밝히지 않고 고향 마을을 떠났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하늘함 도인이 仙界에서 지내는 동안 세상은 무척 많이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물욕(物慾)에 빠져 허덕이고 미신(迷信)이 판쳤다. 나라는 극도로 어지럽고 민심은 흉흉했다. 하늘함 도인은 天下를 周遊하고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자손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늘 마음을 지녀, 하늘 기운을 받아서, 하늘 사람처럼 사는 법을 가르쳤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그가 가르침을 펴자 마을의 분위기는 금방 달라졌다. 옛날 하늘함 도인이 촌장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마을이 되었다.

그러자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이 마을을 무척 부러워하게 되었다. 이웃 마을 사람들도 하늘함 도인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 마을들도 아주 평화로운 마을로 변했다.

하늘함 도인의 소문이 순식간에 멀리 퍼져나갔다.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함 도인한테 가르침을 청했다. 하늘함 도인은 온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교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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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사악한 무리들한테 핍박도 많이 받았다. 그들은 백성들이 하늘함 도인을 하늘처럼 섬기자 자기네의 세력을 잃을까봐 두려워했다. 어떤 자들은 하늘함 도인을 죽여 없애려고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하늘함 도인을 해치지 못했다. 해치려 들면 자기네가 먼저 더 큰 고통을 겪었다. 그들도 결국은 하늘함 도인한테 귀의하게 되었다.

하늘함 도인의 교화로 만 백성이 새 삶을 얻었다. 사람들은 욕망을 절제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냈다. 얼마 후 온 나라가 태평해졌다.

하늘함 도인은 일을 마치고 선계(仙界)로 돌아갔다. 그후 세상 사람들 중에도 마음이 아주 잘 닦인 이들이 하나 둘 삼단선인(仙人)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늘 사람 되는 법도 차차 크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엔 하늘함 도인이 뿌리고 온 씨앗이 열매를 거두었다.

숱한 사람들이 하늘 마음을 닦아 하늘 기운을 받아서 仙人이 되었다. 그리하여 광명시대(光明時代)가 활짝 열렸다. 이 光明時代는 몇 천년 계속되다가 서서히 물러갔다. 다시 어둠의 시대가 오고, 하늘 사람 되는 진도(眞道)는 극소수의 사람들한테만 비밀히 전해졌다. 그들을 통해서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출처: 국선도 삶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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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함도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신령스러운 이곳 백두산 천지에 혹시라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신선님들과 우리 민족의 스승님들께서 계시진 않을까 하여 한참을 두리번 두리번 하고 잠시나마 침잠해서 제 호흡으로 깊이 들어가 보기도 하다가 이젠 내려가야 한다는 안내해주시는 분의 말에 아쉬움을 남긴채 천지 표석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언제다시 보고 인사하게 될 지 모를 우리민족의 성지인 천지에 다시 한 번 곱게 인사드리고 천지 봉우리에서 장백폭포를 향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봉우리를 모두 보고 내려오기 시작 할 때 즈음에, 갑자기 서쪽으로 부터 짙은 구름과 안개가 밀려들더니 열려있던 하늘문을 닫는 것 처럼 천지가 다시금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한치 앞도 안보이기 시작하면서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도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이게 무슨 천지조화인가 싶어 다시 한 번 백두산의 신령스러움에 경외감을 느끼면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봉우리를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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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봉우리 아래에 있는 중국측 기상대 앞에 커다랗게 붉은 색으로 "조국이익고우일체"라는 글이 있어 안내해 주신 분께 여쭈어보니, "중국의 이익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라는 뜻이랍니다. 어찌 한민족 최대의 성지에 한 나라의 이익을 언급할 것이며 그것을 바로 천지라는 성스러운 장소 바로아래에 이렇듯 크게 적어 오가는 관광객들 (아마도 대부분 한국관련 관광객들에게 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에게 잘 보이도록 해놓았는지, 마음 속이 참람하기가 그지없었습니다.

만약 백두산이 저들 한족의 성지였다면, 어찌 이런 불경스러운 짓을 할 것이며 또한 우리나라가 힘이없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 제대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채 백두산을 중국 쪽에 빼앗겨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나 싶어 끓어오르는 마음을 주체키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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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으로 가득했던 천지를 내려와 백두산 천지에서 바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다는 장백폭포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저멀리 큰 봉우리 사이로 하이얀 물줄기 떨어지느 것이 보입니다. 도대체 이런 험준하고 높은 산에 이런 신기한 비경이 숨겨져 있다는게 믿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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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폭포를 찾아 휘적휘적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매캐한 유황냄새가 나서 계속 앞으로 걸어올라가 보니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려 내를 이루는 곳이 나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보니 "앗 뜨거워" 라는 탄성이 절로 날 정도로 아주 뜨거운 온천물이었습니다.

백두산이 구름 위 머리로는 하늘을 이고 있고, 크고 찬 천지를 내어놓으면서도 그 속으로는 뜨거운 불을 품어안고 있다고 하더니 참으로 그말을 실감나게 하는 광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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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물이 장백폭포를 이루고 흘러내리는 냇가에 다가가 가만히 물을 떠 마셔보니 그 물맛이 참으로 시원하고 장쾌하여 그 어떤 물 보다도 마음 속 잡념과 번뇌들이 쓸려내려가는 듯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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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퉁이만 돌아가면 장백폭포가 보일텐데, 옆을 둘러보니, 푸르디 푸른 신록의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초원이 보여집니다. 백두산 천지 기운은 장쾌하고 영험한 반면 조금 내려와 이곳 장백폭포아래에는 이렇듯 선경과도 같은 초원이 있고 다사로운 기운과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뭇 생명들을 키워내고 살려내니 이것은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산 하나에 웅장한 기운과, 부드럽고 다사로운 기운 그리고 상쾌한 기운 등 여러가지 모습을 함께 품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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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장백폭포에 도착했습니다. 커다란 봉우리를 양 옆으로 끼고 드높은 물줄기 두개가 함께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니 그 장관과 소리에 혹여라도 남아있던 마음 속 찌꺼기마저 모두 쓸려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폭포아래에는 여전히 두터운 얼음과 잔설이 남아있어 이곳이 겨울에는 어떠할 지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장백폭포 오른쪽에 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천지물가에 가서 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장백폭포 바로 위가 조금전 보고내려온 천지라고 하니 저 시원한 물이 천지에서 내려온 물이 틀림이 없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한 물은 커다란 강 세개를 빚어낸다고 합니다. 하나는 압록강이요, 둘은 두만강이요 나머지 하나는 송화강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강 세가지를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강의 진원지가 되는 산은 딱 하나밖에 더 없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한국에 있는 속리산입니다. 속리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한강, 낙동강, 금강을 만들어 내는데 백두산처럼 그 물의 기원이 천지와 같이 큰 물의 원천이 있는 것은 아니라 다소간 손색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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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우실하 교수님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아시아 북방계열의 문화는 3수 분화의 문화라고 합니다. 3수 분화의 세계관’(The Trichotomous Worldview: 1-3-9-81)과 그 변형인 천지인(天地人) 삼재론(三才論)은 2수 분화의 세계관인 음양론으로 대변되는 1-2-4-8-16-32-64과는 다른 독특한 사유체계인바 우리민족의 원형은 원래 3수 분화를 기본으로 하여 2수 분화를 수용해왔다고 합니다.

쉽게말해, 천지인/정기신/삼태극/삼신사상 등으로 대별되는 한민족 전래의 사유체계에서보면 큰 강 세줄기를 내어놓은 백두산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마지막 점이라고 생각하여
참으로 신성하게 생각되어져 왔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고조선과 고구려 고분들의 놓여진 방향을 보면 모두 백두산 방향으로 머리를 두어 우리 민족의 뿌리로 돌아간다는(歸本)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민족의 핏속에 면면히 흘러내려오는 고유의 모든 사유체계와
문화의 원형이 백두산으로부터 비롯되어 왔는데 지금 이 부끄러운 후손들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화독(華毒),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오염된 왜독 (倭毒), 해방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 사상들(洋毒)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되어있고, 우리 본래의 모습과 정신을 잃어가면서 갈길 몰라 헤메고 있는 상황인 듯 보입니다. 그 결과로 땅떵이는 계속 줄어들어왔고, 심지어는 나라를 잃기도 하고, 해방 후에도 서로 갈라져 으르렁 대다가 서로 죽이고 죽고, 바르고 꿋꿋한 인재들은 죽임을 당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것은 이제 천대하고 남의 것만 존중하여 이제는 겉모습만 한민족이지 그 머릿속과 정신은 오히려 남의 나라 사람과도 같으니 백두산에 계실 조상님들의 신령스러운 영령들 앞에서 눈물로 그 억울함과 죄송함을 고해봅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 미약하나마 원래 밝음을 다시 밝힐 수 있도록 선인들께서 도와주십사 두손 모아 엎드려 빌어봅니다.


장백폭포 아래 유황온천에 들러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후, 백두산을 천천히 내려 오는 도중에 잠깐 백두산 중턱에 있는 숲에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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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장백송 숲 사이사이로 이름모를 꽃들과 풀들이 서로의 건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서로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남한, 북한, 조선족 이렇게 서로 갈리어 사는 우리들에게 서로 다투지말고 어울려 살아라라고 말해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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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날도 저물어 가고, 마치 꿈과 같았던 하늘이 열리는 듯 했던 백두산 천지와 웅장하게 흘러내리던 장백폭포 모습 그리고, 사람들에게 다투지 말고 조화롭게 살라고 교훈을 주던 숲을 뒤로 하고 산을 내려와야 합니다.

조화선경을 떠나 다시 속세로 돌아가던 하늘함 도인의 망극한 마음이 이런 것일까 싶습니다.
이제 다시 세상에 나아가면, 혹여 다시 한 번 이곳에 와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름모를 아름다운 백두산 꽃에게 마음을 담아 전해봅니다.

우리 이제 세상에 나가 우리 해야할 일들을 잘 마치게 되면
다시 이곳에 와서 그대를 다시 찾고 하늘이 열릴 때를 기다려
선인(仙人)들을 좇아 참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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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All retrieved on July 12, 2008)

1. 백두산, 고은
http://educareon.myzip.co.kr/tale/taleindex.htm

2. 하늘함 도인 이야기, 국선도 "삶의 길"
http://heykorean.com/HK_Club/HK_Club_board/HK_Club_View.asp?club_id=10000228&board_no=1282&list_no=2&board_type=b&item_seq=107153&Page=1&Search=&key=

3. 우실하, "‘3수 분화의 세계관(1-3-9-81)’이란 무엇인가?" [미술세계] 2008년 3월호
http://www.gaonnuri.co.kr/z/view.php?id=punch&no=101&PHPSESSID=f560de64609948f53a91f48ef7cd669c

4. 국선도 삼재의 도, 국선도 1,2,3.
http://paper.cyworld.com/kouksundo/304933



Posted by Jeonghwan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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