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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서울대 경영대, 경영학은 부전공? | ||||||||
학생들 고시·공인회계사 준비 열중… 취업도 외국계 컨설팅회사·공기업 선호
10월 29일. 관악산 기슭 서울대 경영대학(58동) 주변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었다. 엘리트 서울대 경영대생들은 과연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진로를 꿈꿀까. 이 대학 1층 도서관에는 중간고사가 막 끝났음에도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150여 석 규모의 열람실을 차지하고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학생들은 무엇을 공부하고 있을까. 학생 대부분의 책상에는 마케팅·재무 등 경영학 전공 관련 서적과 형법총론, 행정법 등 법학 서적들이 놓여 있다. 서울대 출신 법조인, 법대 경영대 순 도서관 입구에서 만난 한 학생이 2층에도 별도의 열람실이 있다고 귀띔했다. 2층 열람실은 도서관은 아니지만 칸막이가 있는 100여 개의 좌석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이곳은 일명 ‘고시실’로 경영대생 중 행정·사법고시와 로스쿨, 그리고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서울대 경영대생들이 국내 기업(대기업 또는 중소기업)에 취업하거나 벤처기업 등 창업전선에 뛰어들기보다 법조인이 되기를 원하거나 공기업 또는 외국계 컨설팅업체에 입사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서울대 내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들이 정작 기업에 들어가서 일하지 않고, 자격증을 따거나 편하고 안정된 직장만 선호하는 세태가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영대학 학부 정원은 한 학년당 130여 명이다. 이들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주로 ▲사법·행정고시, 공인회계사(CPA) 같은 ‘라이선스형’ 직업 ▲외국계 컨설팅 및 투자금융회사(IB) 등 보수가 많은 ‘금전형’ 직업 ▲공기업 같은 ‘안정형’ 직업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한다. 실제로 서울대 출신 법조인 중 경영대학 출신이 10.8%로 법과대학 다음으로 많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반면에 처음부터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극소수고, 중소기업에 취직하려는 학생도 드물다. 대기업은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대기업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들어가 3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에 경영대학원(MBA) 과정으로 옮기겠다는 것이 대부분 학생의 목표다. 이런 현상만 놓고 보면 기업인을 육성한다는 서울대 경영학과의 설립 취지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서울대 경영대의 설립 취지는 ‘기업을 주축으로 한 모든 경영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경영원리와 관리기법을 교육·연구하여 창조적 사고능력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예리한 통찰력을 지닌 전문 경영자를 양성한다’고 돼 있다. 경영대생들은 이 같은 비판적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영진(04학번·가명)씨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김씨는 “일반 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고시에 합격하면 공무원 중에서도 말단이 아닌 사무관급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서 “고시를 패스하면 신분적 불안 없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솔직히 고시에 신경 쓰면서 경영학 과목은 등한시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다른 대학의 행시과목을 듣기도 하고, 휴학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에 처음 실시하는 로스쿨 시험을 봤다는 고진한(가명)씨는 “사법시험을 통과하거나 로스쿨을 나와서 법조인이 되는 것은 명예와 관련성이 많은 것 같다”면서 “굳이 판사가 되지 않더라도 기업 인수합병(M&A) 등 경영 전문 변호사로 활약할 수 있는 길이 많아 법조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경영대 대학원생인 이명수(01학번·가명)씨는 요즘 금융 공기업에 취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경영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는 고시 생각도 했고, 유학도 가고 싶었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있으니까 직장 내에서 경쟁이 별로 없고 급여를 많이 주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업 선택의 가장 큰 요소는 급여” 경영대에서 만난 이영민(04학번·가명)씨는 “일반적인 학생들의 직업 선택 요소 중 페이(급여)가 가장 큰 요소”라고 말했다. 즉 학생들은 6000만 원을 주는 외국계 컨설팅회사에 가는 것을 택하지 3000만 원을 주는 대기업에 가지 않는다는 것. 이씨는 “컨설팅업체에 가는 것은 비록 일이 많지만 페이가 높기 때문에 상쇄된다”면서 “특히 컨설팅업체는 일반 기업과 달리 처음 입사부터 중요한 일을 맡긴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대기업에 가면 관련 산업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컨설팅업체에 가면 독특한 스킬(기술)을 익힐 수 있고, 이러한 스킬이 자기의 커리어(경력)가 되고, 이런 경력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경영대생 모두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대 로비에서 만난 전석주(04학번·3학년)씨는 학생의 신분으로 선배들과 유통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걸음마 단계인 소(小)기업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유통업체로 키우기 위해 젊음을 불사르겠다는 것이 전씨의 각오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 경영학과에 진학했다는 전씨는 “수박을 팔아서 5000만 원을 버는 것이나 좋은 직장에서 연봉을 5000만 원 받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경영대생들의 이 같은 직업관에 대해서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공존하고 있다. 긍정론자들은 우리 사회가 1997년 외환위기라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학생들이 철저하게 경력 관리를 통해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인식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즉 서구식 자본주의형 인간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 뚜렷한 보상도 없이 기업에 가서 다른 나라 기업인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프런티어십을 키우라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미국 경영대생 외면으로 제조업 몰락 반면 부정론자들은 최근 미국의 경제위기를 예로 들면서 미국 경영대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컨설팅회사, 투자은행 등 월가로만 몰려간 결과 미국의 제조업 분야가 몰락하고, 급기야 금융 분야가 너무 비대해져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경영수업을 배운 인재들이 기업에 가서 능력을 발휘해야 우리 경제가 더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서울대 경영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나라의 국부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 대기업이나 벤처기업”이라면서 “서울대 경영대생들이 기업에 더 많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우리 경제에도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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