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hoi's Research/2.Contemporary Issues

[펌] 왜 통일은 개혁인가, 하트-랜즈버그(Martin Hart-Landsberg), Monthly Review

by Jeonghwan (Jerry) Choi 2009. 4. 5.


왜 통일은 개혁인가

[해외 시각] 위기 이후 한국의 정치경제와 통일문제


미국의 진보저널 <먼슬리 리뷰> 4월호에 한국의 정치경제 현황과 통일문제에 관한 글이 게재됐다.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시에 있는 루이스앤드클라크대학 경제학 교수인 마틴 하트-랜즈버그(Martin Hart-Landsberg)가 기고한 '한반도 통일의 전망과 함정'이라는 글이다. 한국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낸 바 있는 그는 이 글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 정치경제의 개혁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글은 필자가 미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 쓴 것이지만 한국인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고 보아 출판사 필맥을 통해 <먼슬리 리뷰> 측의 허락을 얻어 번역해 싣는다. <편집자>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거의 모두가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 북한, 남한의 정부는 물론이고 북한과 남한의 국민도 대다수가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각자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말을 무슨 뜻으로 사용하는 것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그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말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일종의 논란과 경합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점은 통일의 과정이 건전하다면 그 결과로 바람직한 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국민이 필요로 하는 바를 진정으로 반영하는 통일의 과정을 촉진시키는 한국의 노력을 지지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말해 미국의 대중매체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북한이 남한에 신속하게 흡수되는 것(독일의 경험과 비슷한 방식)과 점진적으로 흡수되는 것(흡수의 과정이 천천히 진행되어 북한이 붕괴하지 않고 전체적인 통일비용이 최소한으로 억제되는 방식)이 그것이다. 두 가지 선택지 모두 기존의 남한 정치경제가 확장되고 강화되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에 당연히 포함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실질적인 통일, 즉 두 국가의 국민이 통일된 나라의 새로운 정치경제를 창출하기 위한 공동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통일은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

대체로 보아 그 이유는 북한은 의미 있는 협상을 요구하고 실현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가정과 북한의 경험에는 가치 있는 것이 없다는 가정이 전제되는 데 있다. 북한 사람들도 새로운 체제를 필요로 하고 새로운 체제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남한의 노동자들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체제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실제로 원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명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곧 우리가 한반도의 통일을 단순히 상충하는 두 개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해서 통일이 어느 쪽에 더 이익이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보다는 오히려 상충하는 계급이익에도 우리는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계급이익은 국익과 같은 것도 아니고, 국경에 의해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고려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과 직결된다. 그것은 남한의 정치경제가 변화해야 할 필요성,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한 진보적 통일전략의 결정적인 중요성이다.

성장과 위기

남한은 경제개발에 성공한 나라로서 다른 제삼세계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는 나라이며, 따라서 통일된 새로운 한국을 건설하는 데 남한이 매력적인 토대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크게 다르다.

1960년대 초엽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남한이 수출 주도의 성장을 빠르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낸 과정은 복잡하지만 과도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간단히 말해본다면 국내적 요인 두 가지와 국제적 요인 두 가지를 더해 모두 네 가지의 요인에 의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적 요인은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지도(재벌이라고 불리는 남한 대기업집단의 활동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노동에 대한 국가의 억압이었다. 그리고 국제적 요인은 일본이 남한의 재벌들에게 기술부품기계를 기꺼이 판매하고자 했다는 점과 미국이 남한정부에 기꺼이 정치적, 금융적 지원을 해주고 남한의 수출시장이 돼주고자 했다는 점이었다. 남한의 국민은 대체로 군사독재 아래서 일종의 행진을 강요당했고, 그 결과로 남한의 국가경제가 크게 변모했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이런 네 가지 요인이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남한이 계속해서 경제발전을 이루어나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남한의 경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와해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보아 그것은 성공 그 자체가 초래한 모순의 결과였다. 그때까지 남한은 매우 빠른 성장을 달성했고, 처음으로 무역흑자도 실현했다. 무역흑자 덕분에 재벌들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했고, 생산적인 투자보다 투기적인 투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오랜 기간 이어진 성장과 그 방식으로 인해 노동계급이 다수를 이루는 대규모 산업도시들이 생겨났고, 결국은 1987년에 노동자의 파업이 대대적으로 펼쳐지면서 민주적인 노동조합들이 생겨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크게 올랐다.

이 시기에 남한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 것이 일본의 생산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자 그들은 남한의 수출업체들에게 공급해오던 주요 투입자재를 더 이상 공급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다. 게다가 대부분 미국시장에 대한 수출을 통해 쌓이게 된 남한의 무역흑자가 미국정부를 자극했고, 이에 따라 미국정부는 원화를 평가절상하고 미국의 상품과 기업에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남한정부에 가했다. 이렇게 전개된 상황은 남한의 수출동력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남한의 수출 증가율은 1987년의 36.2%에서 1988년에는 28.4%, 1989년에는 5.7%, 1990년에는 3%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러한 추세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더욱 심화됐다.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국인투자, 특히 일본의 투자에 힘입어 남한의 제품에 경쟁이 되는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중국이 해외 다국적기업들의 수출거점이 된다. 남한은 낮은 노동비용으로도, 발전된 기술로도 경쟁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남한의 무역적자와 남한 기업들의 손실이 점점 더 커져갔다. 1996년에는 남한에서 규모가 큰 순서로 49개 대기업집단이 총 2740억 달러의 매출로 3200만 달러의 이익을 거두는 데 그쳐 매출 대비 이익률이 0.1%에도 미치지 못했다(<비즈니스위크> 1997년 12월 29일).

남한의 국가는 대응능력이 거의 없었다. 더 이상 재벌을 통제할 수 없었고, 당연히 일본정부나 미국정부를 통제할 수 없었으며,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전략을 통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한의 국가는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데로 관심을 돌리고, 기업들의 수익성을 회복시키려는 노력으로 노동운동을 거듭 공격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이미저항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힘을 기른 상태였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은 1996년에 억압적인 새로운 노동법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였다.

마침내 1997년에 경제가 붕괴했다. 그 해의 상반기에 대규모 재벌들 가운데 몇몇이 파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보다 광범위한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외국인투자자들과 해외의 채권자들은 남한이 경제적으로 취약함을 알아차리고는 그동안 갖고 있던 남한의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고 남한의 기업들에게 대출만기를 연장해주기를 거부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경제가 곤두박질하자 남한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8년에 남한의 국내총생산(GDP)은 6% 이상 줄어들었다. 간단히 말해, 여러 해에 걸쳐 준비돼온 구조적 위기가 본격화하자 남한의 경제가 그 타격을 입고 쓰러져버렸던 것이다.

구조조정

1997-98년의 위기에 이어 전개된 경제적 구조조정과 관련해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더 말해야겠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일본정부와 미국정부가 남한정부의 금융지원 요청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남한의 위기가 더욱 악화됐다는 점이다. 일본정부와 미국정부는 더 이상 남한의 성장을 뒷받침해주는 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미국정부의 앞잡이 대리자 역할을 하는 IMF가 남한에 부과한 신자유주의-자유시장주의 구조조정에 대해 남한의 재벌들이 지지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이 외국자본에 대해 상대적으로 재벌들을 약화시키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개혁조치를 견디고 살아남는 데 필요한 정도의 구조적 힘은 이미 갖추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의 계획체제에 대해 이미 거부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이제는 노동이 그들의 주된 표적이었고,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구조조정은 계급간 세력균형점을 그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동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일련의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한에서 그 뒤로 실시된 구조조정의 부담은 노동자들과 중소기업들에게 가장 많이 돌아갔다.

위기 이후의 경제

1999년과 2000년에는 남한의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했고, 이에 따라 남한에 부과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성공했다고 IMF가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은 다음해에 극적으로 떨어졌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과거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위기 이후에는 남한의 경제성장을 네 개의 기둥이 떠받쳤다. 그것은 정부의 적자지출, 외국인직접투자, 소비자지출, 수출이다. 우리는 이 네 가지 기둥에 영향을 미치는 추세들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남한의 경제전망이 악화되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위기 직후에 남한의 경제가 급반등하는 데는 정부의 공격적인 적자지출이 절대적으로 긴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때 정부지출의 수준이 그대로 유지될 수는 없었다. 적자지출은 공적부채의 급증으로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한정부는 IMF로부터 지출을 줄이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외국인투자도 위기 직후의 몇 년 간에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외국인투자의 상당부분은 남한의 자산을 헐값으로 사들이는 데 몰두하는 '벌처투자'였다. 가장 매력적으로 보인 자산들이 다 팔리자 외국인투자가 급감한 것은 의미심장한 현상이었다. 이와 동시에 외국인투자는 남한자본의 탈국적화를 상당히 진척시켰다. 예를 들어 남한의 상장주식 시가총액 가운데 외국인투자의 비중이 40%를 넘어섰고,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규모 상장기업들 대부분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이 절반을 넘기에 이르렀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의 적자지출과 함께 외국인투자도 줄어들자 경제성장이 본격적으로 둔화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소비자지출이 늘어난 덕분에 경제가 일시적으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소비자지출은 신용카드 부채에 크게 의존한 것이었다. 신용카드 지출은 정부의 뒷받침을 받는 가운데 1998년의 530억 달러에서 2002년에는 5190억 달러로 급증했다. 소비자의 거래 가운데 거의 3분의 2가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와 카드대출로 이루어지기에 이르렀고, 수많은 가계가 머지않아 부채의 부담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될 처지였다.

대대적인 파산사태로 금융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에 두려움을 느낀 정부는 신용카드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조치로 인해 2003년에 개인소비지출과 투자가 동시에 급감하면서 경기침체가 초래됐다. 2004년에 개인소비지출이 더 줄어들었고, 투자도 정체됐다. 그리고 그 뒤로 여러 해가 지나도 상황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2008년 상반기에 가계소비지출은 GDP의 48.3%라는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코리아헤럴드> 2008년 7월 29일).

이러한 여러 가지 추세의 결과로 지금 남한의 경제는 어느 때보다도 수출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2008년 상반기에 GDP 대비 수출의 비율은 64.9%라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보다 중국이 남한의 주된 수출시장이 된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남한의 수출은 대부분 중국에서 추가로 가공된 다음에 미국으로 다시 수출되는(중국의 수출로서) 중간재다. 따라서 이제 남한의 경제성장 전망은 더욱 위태로운 토대에 근거하게 됐다. 그 위태로운 토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미국경제의 수입능력이다(이 토대는 최근에 미국의 거품경제 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로 거의 무너졌다). 게다가 남한의 경제성장과 그 국민의 필요 충족 간 단절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 지난 2001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노동자 5.1절 통일대회에서 남측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노조원들과 북측 조선직업총동맹 노동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강의 악순환과 계급갈등

노무현 정부(2003–07년)는 남한의 경제적 입지가 약화되는 데 대응해 외국인투자의 감소세를 증가세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노무현 정부는 입주 외국기업에 대해 세금을 감면해주고 환경 및 노동과 관련된 규제를 면제해주는 경제자유구역을 세 군데 지정했고,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투자 및 자유무역에 관한 양자간 협정을 추진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직권중재와 경찰의 개입을 통해 노동자들의 파업을무력화시키는 한편 기업들에 임시직 노동자 고용을 장려하고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어렵게 만드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반노동 공세에 나섰다. 2007년 12월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대체로 보아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똑같은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노력들도 그동안 외국인투자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늘리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2008년 상반기에는 오히려 외국인직접투자가 10억 달러에 가까운 순유출을 기록했다. 이는 1980년에 외국인직접투자에 관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최초의 순유출이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나라들, 특히 중국이 훨씬 더 매력적인 투자 패키지를 제공하고 나선 데 있었다. 2004년에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은 말로 분명히 지적했다. "한국의 경쟁상대는 상하이, 홍콩, 중국이다. 경쟁상대가 어디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투자자들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한에 필요한 것으로 '노동유연성'의 제고를 꼽았다(<코리아헤럴드> 2004년 5월 22일).

정부의 노력은 국내투자를 부추기는 데도 실패했다. 사실 재벌들은 꾸준히 생산을 나라 밖으로 옮기고 있다. 남한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는 2003년의 59억 달러에서 2004년 81억 달러, 2005년 92억 달러, 그리고 2006년 1-9월에는 125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리고 주된 투자처는 중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렇게 밝혔다. "한국의 제조업체 10개 가운데 9개 정도는 장차 중국에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의 낮은 생산비용과 적극적으로 요구에 맞춰주는 중국의 규제 운용을 고려하면 중국이 한국보다 더 매력적인 투자처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산업공동화의 조짐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의 기업들은 국내에서 조업하는 데 필요한 설비의 구매를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다. 2004년에 남한의 제조업 부문에서 공장과 설비 신증설에 지출한 금액은 1996년에 비해 4% 이상 적었다. 1996년이전에는 연평균 10% 이상으로 증가하던 시설투자가 2000년대 전반에는 단지 연평균 1.1%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의 하나로 지금 제조업 부문의 고용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미래의 문제들을 예고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위기 이후에 전개된 구조조정의 대가를 이미 톡톡히 치르고 있다. 1996년에 9% 정도였던 빈곤율이 2006년에는 20% 가까이로 치솟았다. 중산층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전체 가구가운데 중산층 가구의 비중은 1996년의 56%에서 2006년에는 44%로 축소됐다. 그리고 불평등이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소득순위로 최하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버는 소득에 대한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버는 소득의 비율이 1996년에는 4.5배였는데 2006년에는 7.1배로 크게 높아졌다.

이렇게 부정적인 사회적 추세가 생겨난 주된 원인은 노동시장의 구조조정에 있다. 전체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위기 이전의 58%에서 2006년에는 45%로 떨어졌다. 또한 이제 노동력의 절반을 넘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달에 버는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50%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코리아타임스> 2006년 12월 31일). 이는 남한의 정부와 업계가 기업의 수익성과 수출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울여온 노력의 내용이 낳은 논리적인 결과다.

남한국민 대다수가 필요로 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데 신자유주의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아마도 2004년에 <한국방송공사(KBS)>가 경제상황에 관해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일 것이다. <코리아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 여론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금융위기가 나라를 뒤흔들었던 1997년 말보다도 지금의 경제상황이 더 나쁘다고 느끼고 있다. … 특히 응답자의 52.6%는 자신의 현재 생활수준이 6년 전에 비해 더 열악해졌다고 말했고, 자신의 생활여건이 장차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단지 9.9%에 그쳤다."

통일문제와 앞으로의 과제

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남한의 노동자들에게 재앙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제는 남한이 누적적인 하강의 악순환에 갇혀버린 점이다. 구조조정은 해외투자와 수출에 대한 경제의 의존도를 높였다. 이에 따라 외국기업과 재벌은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해외투자와 수출에 대한 의존도만 더 높이게 될 것이다.

남한의 노동자들은 집단행동과 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애써왔지만 이제는 심각한 구조적 제약에 직면해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강경한 행동은 자본유출을 가속화시키고, 정부로 하여금 경제난 심화에 대해 기업의 행태나 정부 자신의 정책을 문제 삼기보다는 노동자들을 탓하게 하는 빌미가 된다. 비극적이게도 중산층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서 정부가 자신의 정책에 대한 반대에 저항하거나 그러한 반대를 억압하기 쉽게 만들어주고 있다.

분명히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나라 전체 정치경제에 획기적인 구조적 전환이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과제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고찰하는 맥락에서 통일이라는 쟁점이 관건이 된다. 나라의 분단은 남한정부에게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항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돼주고 있다. 예를 들어 남한정부는 계속해서 노동조합 지도자를 체포하고 노조결성과 파업을 억압하는 데 국가보안법을 이용하고 있다. 남한정부는 또한 사회운동 지도자를 체포하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시위와 같은 각종의 시위를 억압하는 데도 국가보안법을 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한정부는 비판적인 대안의 사고를 촉진할 수 있는 사상에 대중이 노출되는 것을 제한하는 데도 계속해서 국가보안상의 우려를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7월에는 국방부가 군부대 안에서 병사들이 이른바 '불온서적'을 보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전군에 내렸다. '불온서적'은 친북, 반정부, 반미, 반자본주의에 속하는 책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23종의 책이 '불온서적'으로 지정됐다. 군당국은 또한 '위험한' 문서가 군부대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우편물을 장교가 참관하는 가운데 개봉하도록 지시했다(<한겨레> 온라인 영어판 2008년 7월 31일). 2008년 8월에는 남한정부가 대학의 명예교수를 비롯해 8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웹사이트(이 웹사이트는 북한에 대해 비판하고 있음에도)를 운영하는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그들의 죄목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통일문제에서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노동자의 조직화나 기존의 남한 정치경제에 대한 대안을 강구하고 주장하는 진보적 노력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계속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남한의 민중에게 필요한 변화의 목록이 이미 작성돼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한 변화를 통일과정의 일부로서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담은 실천계획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남한의 기존 구조를 강화하기만 하는 통일은 남한의 노동자는 물론이고 북한의 노동자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돼야 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변화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고 그러한 변화가 실현될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통일의 과정을 촉진시킬 수 있는 전략이 개발돼야 한다.

그러한 전략에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포함돼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대화다. 우리는 남북분단선을 가로지르는 대화의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싸워야 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해 남한과 북한의 노동조합들이 적절한 노동법과 일터의 조직형태에 대해 논의하고, 남한과 북한의 교육자들이 민주적인 통일국가의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남한과 북한의 환경주의자들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전략을 모색하고, 남한과 북한의 여성운동가들이 여성의 인권을 증진하고 보호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이러한 대화는 새로운 비전과 보다 독립적인 북한쪽 대화상대 조직의 창출에 기여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남북분단선 양쪽의 사람들이 각각 그들의 정부가 수립하고 추진하는 통일전략을 평가하고 희망컨대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데 필요한 기준도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화를 준비하는 것만 해도 남한의 사회운동을 강화하고 통합하는 동시에 남한의 정치적 의제에 중대한 전환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촉진되도록 돕기 위해 우리가 이 나라(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우리는 국가보안법의 파괴적인 성격에 대해 미국인들을 교육하고, 미국정부에 압력을 가해 남한정부에 국가보안법 이용의 중단을 요구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과 미국 간 관계의 정상화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미관계의 정상화는 생산적인 남북 간 대화를 촉진하는 분위기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이 현재 남한과 북한에 존재하는 정치경제와는 상당히 다른 새로운 정치경제를 창출하기를 원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라는 점에 대한 이해가 이 나라에 보다 확산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런 우리의 노력을 단지 남을 돕는 이타적인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노력에서 진전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곧 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크게 줄어들어 인명피해가 예방되고, 우리(미국)의 막대한 군사예산을 줄여 그보다 훨씬 더 필요한 사회적 지출을 늘릴 수 있게 됨을 의미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노력으로부터 새로운 사회적 비전이 생겨나온다면 그 비전은 우리에게 크게 필요한 미국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 우리가 새로운 사고를 하도록 자극해줄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연대가 아니겠는가.

(번역=필맥 MR팀)

/마틴 하트랜즈버그 미 루이스앤드클라크대학 교수 메일보내기 

Source: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403151835&section=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