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維新)의 망령: 메이지에서 박정희, 그리고 2024년 계엄까지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는 "유신"이라는 단어를 통해 각국의 정치적 변혁과 권위주의적 통치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고대 문헌에서 "유신"은 혁명이 아닌 발전적 개혁을 뜻하며,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긍정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 단어가 가장 널리 알려진 계기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이 봉건적 막번 체제를 청산하고 중앙집권화와 서구화를 통해 근대 국가로 나아간 상징적 사건으로, 동아시아 전역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반면 한국에서 "유신"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기억된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선포한 10월 유신헌법은 권력의 집중과 영구 집권을 목표로 한 체제로, 일본의 쇼와 유신(1936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유신은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폭압적 기제로 작동했으며, 이는 그의 서거 이후 신군부로 이어져 1980년 광주항쟁 진압 등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한국은 표면적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했으나, 메이지 유신에서 시작된 일본 기득권 세력의 모델과 유사한 한국의 구체제 세력—군부, 법조계, 경찰, 사학, 재벌, 언론 등—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이들은 박정희의 유신을 포함한 권위주의적 DNA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1997년 IMF 사태로 민주화된 김대중 정부가 등장했으나, 구체제 세력은 권력을 되찾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구체제의 복귀를 의미했지만, 부패와 헌정 위기로 각각 사법처리와 탄핵을 맞았다. 이후 등장한 문재인 정부조차 이러한 구체제를 완전히 해체하는 데는 실패했으며, 이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또 다른 권위주의적 통치 시도로 이어졌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정권은 정당성 약화와 민주세력의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불법 계엄을 시도하며 박정희식 유신의 재현을 모색했다. 다행히 국회의 반대로 이 계엄은 무효화되었으나, 이 사건은 구체제 세력의 "유신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동아시아 정치의 중요한 병폐로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제는 과거의 유신을 추종하며 반복되는 동아시아 피시즘 DNA를 철저히 극복할 때다. 일본의 사쓰마-조슈 연합, 쇼와 유신의 군부 독재, 그리고 박정희의 10월 유신과 신군부의 권위주의적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동아시아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시민의 자유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중요한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유신"이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진정한 민주적 미래를 설계할 때다.
2024년 12월 22일
최정환, PhD, MBA,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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